호수 | 2403호 2016.1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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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권순호 신부 |
저는 가톨릭 집안에서 자란 서른살 청년입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계속 신앙을 강요하시만 저의 자유에 대한 구속이라는 생각이 들어 성당에 더 가고 싶지 않습니다. 왜 저의 자유를 구속하며 신앙생활을 계속 해야 하는가요?
권순호 신부 / 주례성당 주임 albkw93@hotmail.com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어느 시의 한 구절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유를 희망하지만 막상 자유가 주어질 때 우리는 그것을 주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명한 철학자 에릭 프롬은 자유에 대해 두 가지 단계를 이야기합니다. 첫째는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의 단계입니다. 기성세대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무조건 반항하는 청소년기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정말 모든 것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자유를 부르짖는 반항기의 청소년도 결국 자신의 또래 집단의 구속 밑에 들어갈 수밖에 없고, 기성세대의 향락 퇴패 문화의 노예가 되거나, 자신의 욕망의 노예가 됩니다. 그래서 자유의 다음 단계가 필요합니다. 에릭 프롬은 두 번째의 자유를 무엇을 향한 자유라고 말합니다. 어쩌면 예수님은 우리에게‘무엇에 대한 자유’에 대한 해답을 주십니다. 사랑을 위한 자유입니다. 하느님의 아들로, 세상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오히려 사랑을 위해 기꺼이 우리를 섬기는 종이 되십니다. 사랑을 통해 바로 자신의 욕망과 세상의 구속으로부터 자유의 완성을 예수님은 보여주십니다. 아마도, 부모님의 신앙생활에 대한 강요는 첫 번째 자유의 어려움 없이 두 번째의 참된 자유를 자녀들이 바로 얻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사랑을 위한 자유를 얻기 위해 자유에 지쳐 길에 쓰러지는 나그네의 고통을 각자 겪어야 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모두 언젠가는 하느님의 집으로 스스로 돌아오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