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사람들

가톨릭부산 2016.09.28 09:49 조회 수 : 106

호수 2402호 2016.10.02 
글쓴이 최순덕 세실리아 

길에서 만난 사람들

최순덕 세실리아 / 수필가 redrose1956@hanmail.net

  금목서 향기가 그윽한 가을이다. 아파트 화단에 우뚝 선 금목서가 작은 꽃들을 조롱조롱 매달고 달콤한 향기를 흩뿌리면 나는 콧구멍을 최대한 크게 벌렁거리며 향기를 즐긴다.
  올봄에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 그 길에서 가을날의 금목서 같은 그리스도인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사람들을 만났다. 인생 여정의 늦가을에 접어든 칠순 즈음의 할머니들이시다. 걸을 수 있을까, 일정에 차질을 주지는 않을까, 은근히 걱정이 되었지만 그것은 사람을 겉만 보고 판단하는 편견과 선입견에서 비롯된 나의 기우였다.
  발가락에 물집이 생기고 터져서 절뚝거려도 묵묵히 선두 그룹을 지킨 그분들의 의지가 예사롭지 않았다. 무릎이 아파서 한 시간도 잘 걷지 못했다는 그분에게 순례길을 허락하신 자체가 온전히 주님의 뜻인 것 같았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은 불가능이 없다는 말씀이 그분들에게 녹아있었다. 각자의 방법으로 봉사활동을 하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그 뜨거운 믿음이 칠순의 나이를 무색하게 하는 것 같았다.
  봉사활동으로 일관된 그분들의 삶을 풀어놓았다. 무뚝뚝한 말투와 거무스레한 얼굴만 봐서는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깊이의 신앙증거였다. 가족이 없거나 형편이 어려운 성소자들을 오랫동안 친자식 이상으로 뒷바라지해오셨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려운 단체를 돕기 위해 모금을 할 때면 주님께서 전혀 뜻밖의 지인의 도움으로 기도에 응답해주시고 부족한 것은 어떻게 해서라도 다 채워주시더라는 기적 같은 이야기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믿는 대로 실천하는 그분들의 굳건한 믿음에서 그리스도인의 향기가 느껴졌다. 청년의 힘을 능가하는 저력을 누가 왜 주시는지 빤히 보였고 아름다운 충격으로 다가왔다.
  봉사활동은 두고라도 기도의 대상과 범위도 나와 내 가족을 넘어서지 못하는 어설픈 믿음 안에서 서성이는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야고보 성인이 걸으셨던 그 길에서 동행한 사람들을 통해 주님께서 함께하신 것 같았다. 돌아가면 이제는 뭔가 작은 일이라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를 하리라 다짐했지만 그것마저 실천이 안 되고 있다.
  10월은 묵주기도의 성월이다. 꽃의 향기가 열매를 위한 것이듯 기도의 열매는 봉사활동을 통하여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아닐까. 기도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타인을 위해 한 단의 묵주라도 돌릴 수 있기를 소원해본다.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 하나라도 남을 위한 봉사활동으로 기도의 열매를 맺는 가을날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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