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주보사랑

 

하경숙 헬레나 / 밀양성당

 

저희 시집은 진각종 불교 집안이다. “애야! 이제 그만 우리 절에 나가자.” 하시던 어머니께 어머니는 당신 며느리당신 며느리가 지옥에 바로 떨어지는 것이 좋습니까?” 남편의 이 한마디로 제게 집요하게 강요하던 개종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저의 남편은 사리분별이 정확하고 정의로운 사람이다. 그러나 내겐 특이하게 엄한 사람이다. 그가 퇴직하고 사업을 시작하였지만, 얼마가지 않아 접어야 했다. 그 충격으로 과음과 증오, 불면증으로 병이 났다. 응급실에서 더 이상 가망이 없으니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제가 마지막으로 그를 위해 대세를 받게 했다. 불교 신자인 그의 머리맡엔 항상 가톨릭주보를 두었다. 그가 어느덧 주보를 상세히 읽고 상념에 잠긴 듯했다. 만나는 신부님마다 모셔와 안수기도를 받았다. 그 후 부활절에 세례를 받고 미사 드리는 내내 주님께 감사했다. 그러나 그 행복도 잠시 우리의 내리막길은 시작에 불과했다. 남편의 병력은 화려했다. 한 해에 몇 번 씩 입원과 수술,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내 집 드나들 듯 들었고, 설상가상 절친한 친구로부터 보증과 병원비 조달로 팔아야만 했던 집 판 현금을 한순간 다 떼이고 말았다. 실망과 좌절로 술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그는 방황의 끝을 보여주었다. 남편은 점점 실의에 빠진 채 무기력해졌고, 삶을 부정했다. 16년 동안 이런 상태가 반복되었고 우리 가족은 몸도 마음도 피폐하여 가고 있었다.

어느 날 기도 중에 주님께 의탁해보아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오래전 그만두었던 성체조배와 레지오를 다시 시작하였다. 가장 사랑해야 할 사람을 철저히 미워해야만 하는 자신이 너무 괴로워 예수님께 울며 청하였지만 신심 미약한 내겐 아무 응답도 듣기지 않았다. 내 뒤차례에 오는 자매가 눈을 지긋이 감은 채로 말을 들려주었고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듣겼다. 주저앉고 싶은 내 삶에 자양분이 되어 한 주일을 지탱하게 하였다. 칠흑 같은 내 삶에 한 줄기 빛으로 다가온 레지오의 입단은 나의 모든 것을 바꾸었고,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다. 생각하면 제게 주신 것도 많았다. 적절한 보험과 별장 같은 집도 주셨다. 이제 사랑하는 단원들과 함께 천상의 지혜와 용기와 희생으로 성령 안에서 행복하고 싶다는 열망이 솟구쳤다.

병원에서 더 이상 치료할 방법이 없다고 했을 때 차마 그의 눈을 바로 볼 수 없었다. 하루걸러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먹지 못하는 나는 극심한 통증으로 뒹굴었다. 순간 나는 아프면 안 되는데. 그를 간호해야 하는데를 되뇌며 그만 울음이 터져 나왔다.” 당신 가면 난 어떻게 해! 이렇게 아플 때 나는 어떡하라고! 제발 나도 데려가 달라고 외쳤다. ! 나는 이제사 알았다. 그이만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더 사랑하고 있었음을... 주님! 이제사 알게 해 주시면 어떡합니까? 그가 떠난 빈자리를 어떡하라고... 그이는 밤새도록 곁에 있어 주었다. 힘없이 주무르는 손길이 한없이 슬펐다. 낮게 흐느끼는 소리에 잠을 깼다. 성모상 앞에 꿇어앉은 남편의 앞엔 묵주와 주보가 놓여있었다. 인생은 이토록 슬프도록 아름다운 것일까?

세월은 낮구름처럼 쉬임없이 흐르고 그는 마지막 여정처럼 쉼없이 집 안팤을 손질했다. 그의 정신력은 대단했다. 병마와의 싸움 중에서도 가톨릭주보를 꼭 챙겨와 쉬는 교우 회두에 힘썼고 그 결과 신영세자도 배출하였다. 어느 잡지보다 알찬 주보의 글을 사랑했고 매주 실리는 길을 찾는 그대에게’, ‘누룩’, ‘열두광주리는 신앙생활에 활력이 되었고 궁금증을 해소해 주었다. 그이도 점차 변화되어갔다.

어떤 일이 있어도 주일미사와 성체조배, 레지오 회합에 빠지지 않게 해주려는 그의 마음을 보시어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엎드려 비나이다. 그때 눈물이 되어 눈부시게 비추이는 것은 자애스러운 예수님이었다. 이어 그것은 남편의 모습으로 겹쳐졌다.

! 주님 저의 남편을 살려주세요! 저의 죄를 용서해주소서! 그러나 주님 뜻대로 하소서. 그가 저의 십자가라면 절대 놓지 않고 주님 뒤따르겠습니다. 마지막 순간 주님을 그리워하며 주님 향한 일념으로 부디 영원한 천상 행복 생각하게 하소서! 당신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