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성전이 된 우리
김병수 시몬 신부 / 사회사목국 부국장
오늘은 주님 세례 축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을 찾아가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요한의 세례를 받기 위해 요르단 강으로 몰려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시대 때, 죄를 씻고 정결하게 용서받기 위한 율법의 조항들은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죄와 부정을 씻는 정결예식이라든지, 참회예식들은 대개 큰 부담이었습니다. 많은 시간과 복잡한 예식, 그리고 경제적 비용들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냥 죄의식을 지우지 못한 채 죄인이라 자학하며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달랐습니다. 죄 사함을 위해 다른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진심으로 회개하는 마음을 가지고 세례를 받기만 하면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는 그 선포는 율법과 죄에 찌든 백성들의 마음을 휘어잡아 선풍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각지에서 세례자 요한을 만나러 죄인들이 몰려들었고, 거기에 예수님도 합류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가집니다.‘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죄의 용서를 위한 세례를 왜 받으셔야만 했는가?’공관복음인 마태오 복음서를 보면 세례자 요한도 예수님께 물어봅니다.“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마태 3, 14) 그러자 예수님께서는“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마태 3, 15)라고 대답하십니다.
즉, 예수님의 세례는 하느님의 의로운 뜻이 이루어지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부족한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해 죄 없으신 예수님 자신이 스스로 낮추셔서 내려오심을, 그래서 죄 많은 우리와 하나되어 있음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전지전능한 신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내려오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조건을 가진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내려오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뜻을 잘 헤아리고 순명하신 예수님의 겸손된 모습에 하느님은 응답하십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 1, 11)
형제 자매 여러분, 그 옛날 세례자 요한은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물로 베풀었지만 예수님의 부활 이후 우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는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나 자신은 하느님의 성령이 머무시는 성전이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세례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며, 나 자신이 바로 성전임을 기억하고 거룩하게 살아가도록 노력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