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진다는 것
강헌철 펠릭스 신부 / 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오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수난과 부활에 대한 예고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고자 걸어가시는 그 길이 수난의 길, 죽음의 길임을 아시면서도, 그 길을 가고자 하시는 예수님 자신처럼 제자들에게도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초대하십니다.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삶이 바로 제자의 삶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고백하며 하느님께 구원에의 희망을 두고 살아가는 신앙인의 삶일 것입니다. 그러나 물질주의와 개인주의, 세속화가 짙게 물들어있는 현대사회에서는 신앙에 대한 수많은 위협과 신앙을 양보하고 타협도록 하는 도전들이 너무나 많기에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지난 8월 16일 광화문 광장에서 이루어진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에 대한 시복식 미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강론을 통해 순교자의 삶을 통해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에 대한 귀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이 땅에 믿음의 첫 씨앗들이 뿌려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순교자들과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예수님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세상을 따를 것인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당신 때문에 세상이 그들을 미워할 것이라는 주님의 경고(요한 17, 14 참조)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 됨의 대가가 무엇인지를 알았던 것입니다. … 그들은 엄청난 희생을 치를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에게서 그들을 멀어지게 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즉 재산과 땅, 특권과 명예 등 모든 것을 포기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오직 그리스도 한 분만이 그들의 진정한 보화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예수님과 세상 중에서 예수님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위해 그에 따르는 대가를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투신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러한 선택과 투신이 가능한 이유는 하느님만이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신앙인의 삶은 십자가를 지는 삶이며 그 십자가를 기꺼운 마음으로, 희망의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피할 수 없는 고통이 십자가가 아닙니다.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시련이 십자가가 아닙니다. 하느님께 온전한 믿음과 희망을 두고 세상이 주는 기쁨과 행복보다는 하느님 나라의 행복을 위한 포기를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우리는 참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금 되새겨 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