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392호 2016.07.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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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홍경완 신부 |
성당에 가면 늘‘기뻐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내 삶이 그리 기쁘지도 않고, 또 그리스도인이라면 왜 기뻐해야 하는지 그 이유도 잘 모르겠습니다.
홍경완 신부 /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학장 mederico@cup.ac.kr
피조물이라 태생적으로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우리 인간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안고 살아갑니다. 그 문제들이란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 영원히 살기를 원하면서도 죽음 앞에서 꼼짝도 할 수 없는 인간, 희망을 안고 살아가고 싶지만 실제론 그 반대로 절망 속에 빠져 사는 인간, 자유와 해방을 바라면서도 결국 스스로를 속박하고 마는 인간, 평화를 갈구하지만 갈등과 반목이 지배하는 현실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 해방을 꿈꾸면서도 육체적, 정신적 고통으로 힘겨운 인간, 공동체를 부르짖으면서도 막상 함께 있으면 갈라져 싸우는 인간.
그리스도교는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사랑하셔서 우리가 겪어야 하는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 갈등과 평화와 같은 가장 근본적인 문제들에 답을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 바로 그 하느님의 답입니다. 그분처럼 말하고, 그분처럼 살고, 그분처럼 사랑하면 우리도 그분처럼 부활할 수 있다고 교회는 고백합니다. 부활은 그 최종적 해답입니다. 부활 때문에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용약해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가‘주님 안에서 기뻐하라’면서 아시아에 흩어진 신자공동체를 자주 격려하는 이유 또한 바로 이것입니다. 기뻐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