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신부님께서 제발 천 원짜리 지폐가 헌금함에서 사라지기를 기도하신다는 얘기와 우리 신자들을 개신교 교회에 1개월만 보내서 그들의 투철한(?) 헌금정신을 체험하고 왔으면 좋겠다고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개신교 교회는 신자가 10 가정만 되면 교회운영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조그마한 시골마을에도 여지없이 개신교회는 존재하건만 천주교는 가뭄에 콩 나듯 그것도 최소면 단위 이상에서나 공소 정도를 찾아볼 수 있는 실정입니다. 예수님께서 부자의 헌금보다 과부의 두 렙돈을 더 칭찬하셨죠. 과부는 가진 것 전부를 바쳤고 그것이 하느님을 향한 최선이었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예수님은 가난한 이를 역성드는 척했던 유다 보다 삼백 데나리온 어치의 향유를 쏟아 부은 마리아를 어여뻐하셨습니다.
교무금과 주일헌금으로 교회의 재정을 충당하고 있는 가톨릭 교회는 교회법과 그 규정에 따라 신자들은 교회 유지비를 의무적으로 바쳐야 합니다(교회법 1262조 참조). 세금이나 성사를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기 보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예물이나 기도로 생각하고 바치는 것입니다. “땅의 십 분의 일은 땅의 곡식이든 나무의 열매든 모두 주님의 것이다. 주님에게 바쳐진 거룩한 것”(레위기 27,30)이기 때문입니다.
개신교는 십일조가 헌금의 기본개념으로 정착되어있는 반면, 천주교의 경우는 삼분의 일인 삼십일조 정도입니다. 우리 교회는 신자들의 살림살이를 고려하여 삼십일조가 적정하다고 배려하고 있습니다. 각 가정의 빚이나 부모님 생활비, 자녀들의 용돈, 개인적인 선행 활동비 등의 지출을 고려하여 수입의 삼십 분의 일을 적정선으로 배려하는 것입니다. 헌금의 적정선은 가령, 내 연봉이 3,000만원이라면 삼십 분의 일은 100만원 정도가 되겠죠. 교무금을 월 5만원씩 책정하시고, 일 년 52주의 주일 헌금을 5,000원씩을 내시고, 그 외 2차 헌금과 성탄 대축일과 부활절 감사헌금 등을 고려하면 한 해에 약 100만원 남짓 정도가 되겠네요.
“너희는 십일조를 모두 창고에 들여 놓아 내 집 양식이 넉넉하게 하여라. 그러고 나서 나를 시험해 보아라.-만군의 주님께서 말씀 하신다.-내가 하늘의 창문을 열어 너희에게 복을 넘치도록 쏟아 붓지 않나 보아라” (말라 3,10)고 하신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가 바치는 모든 예물이 기도임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내어 놓는 만큼 은총이 배가 되어 돌아 오는 것을 굳게 믿고 “믿음 안에 살고 있는 지 여러분 스스로 따져 보십시오”(2코린 13,5).
교회는 헌금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헌금은 성사생활을 통하여 얻어지는 은총으로 인하여 나의 내면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감사와 기쁨의 표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