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별(識別) - 거룩한 숙제

가톨릭부산 2015.10.15 06:17 조회 수 : 129

호수 2246호 2013.12.01 
글쓴이 김상효 신부 

식별(識別) - 거룩한 숙제

김상효 필립보 신부 / 화봉성당 주임

데려갈 하나와 버려둘 하나

‘아직’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것을 구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세상의 모든 것을 거울에 비춰보듯 환하게 결정지어 주실 그날이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데려갈 하나와 버려둘 하나를 미리 확정하고 따로 떼어놓는 일을 우리가 하는 것은 매우 경솔한 일이 될지도 모릅니다. 선함과 악함이, 내 안에 뒤섞여 있고, 우리 안에 뒤섞여 있고, 세상 속에서 서로의 몸을 뒤섞고 있는 것을 발견할 때 마다 우리는 당황해 합니다. 진리의 얼굴을 한 허위, 봉사의 얼굴을 한 탐욕, 공공의 선익을 목표로 내세우는 착취, 죄인으로 낙인이 붙은 가난한 사람, 잉여인간으로 치부되는 선량한 사람, 실패자로 불려지는 관용을 베푸는 이…

더구나 이런 혼돈이 매우 구조적이거나 기술적인 사실들 뒤에 숨어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면 우리는 쉽게 대세를 따르는 것으로 양심을 달랩니다.

노아의 방주와 방주의 노아

그럼에도 ‘이미’ 와 계신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의 말씀과 삶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가려내고, 구별하고, 찾아내고, 알아보도록 촉구하십니다. 내 안에, 우리 안에, 이 세상 안에 참다운 가치와 영원의 모습이 담긴 당신의 피조물들이 가득 차게 되길 바라십니다.

노아의 방주란 수동적인 표현일 수 있습니다. 지어놓고 누군가(혹은 무엇인가가) 들어오길 기다려야하는 운명. 그것이 노아의 방주라면, 방주의 노아는 찾아 나서야하는 예언자의 운명입니다. 방주를 지음으로 소명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사람들 속에 들어가 그것들의 의미를 알고, 그러는 사람들의 속내를 이해하고, 그 속에서 챙겨내야만 될 진주를 캐내는 일. 그것이 방주의 노아가 겸손되이 져야할 거룩한 숙제입니다. 그리고 그 숙제는 ‘결국’의 시대를 기다리며 사는 우리가 져야할 숙제이기도 합니다.

깨어 있기 위해

- 모두가 나쁘다고 말하거나 양쪽 다 옳다고 말하는 것은, 말하고 있는 자신의 자존감을 지킬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식별에 이르는 길을 뭉개버리면서 식별의 열정을 지닌 이를 비난하는 것이 됩니다.

- 애정을 지니고 문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세상은 애정을 담고 있을 우리의 내면 한 구석도 허락하지 않기도 합니다. 성적에 목을 매고 있는 학생,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에 얽매인 임금노동자, 육아에 치이는 부모에게 식별을 위한 애정이 자리 잡을 여유를 요구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런 상황에서 ‘내가 못나서…’라는 자괴감에 함몰되지는 말아야 합니다. 내 탓이 아닌 문제들이 허다합니다.

- 식별을 위한 정보를 찾아나서야 합니다. 나에게 들이닥치는 정보의 총량이 진실의 총량은 아닙니다.

부디 더 많은 방주의 노아들이 거룩한 숙제를 감당하게 되길 빕니다.

호수 제목 글쓴이
2146호 2012.02.05  나는 무엇을 하며 어떤 사람인가? 박근범 신부 
2147호 2012.02.12  우리는 주님의 손과 발입니다. 장훈철 신부 
2148호 2012.02.19  수용적 사랑과 희생 원정학 신부 
2149호 2012.02.26  새로운 삶을 시작할 기회인 사순 시기 전열 신부 
2150호 2012.03.04  우리의 본모습을 찾도록 노력합시다 오종섭 신부 
2151호 2012.03.11  성전 정화 사건 김동환 신부 
2151호 2012.03.11  십자가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장민호 신부 
2152호 2012.03.25  십자 나무 열매 김형길 신부 
2154호 2012.04.01  십자가의 어리석음이 하느님의 힘입니다 강지원 신부 
2155호 2012.04.08  일상에서 온 부활 손삼석 주교 
2156호 2012.04.15  하느님의 선물 김두유 신부 
2157호 2012.04.22  하느님의 암호 송현 신부 
2158호 2012.04.29  착한 목자 김태환 신부 
2160호 2012.05.13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강우 신부 
2161호 2012.05.20  하실 일을 다 하시고 하늘로 오르신 예수님 이창신 신부 
2162호 2012.05.27  성령의 선물 김형수 신부 
2163호 2012.06.03  우리도 하나입니다. 김영환 신부 
2164호 2012.06.10  추억어린 첫영성체 김주현 신부 
2165호 2012.06.17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PAY IT FORWARD) 박규환 신부 
2166호 2012.06.24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사람’ 권동성 신부 
색칠하며묵상하기
공동의집돌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