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앙생활은 진실한가?
서정웅 베드로 신부 / 금곡성당 주임
주님을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사는 것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삶일까?”하고 끝없는 물음을 던져봅니다. 예수회를 창설한 ‘행동하는 관상가’ 성 이냐시오는 ‘모든 것 속에서 하느님을 보는 사람, 하느님 안에서 모든 것을 보는 사람’을 최고의 신앙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신앙인은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의 뜻을 잘 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하느님께 사랑을 고백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그 사랑은 식어 버리고 교만으로 인해 자기 자신을 첫째로 여기고 삽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서,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또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하기 위해서, 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이기심을 위해서 행하고, 자신이 얼마나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는지를 알지 못한 채 그렇게 열성적으로 신앙 생활에 전념합니다.
하느님은 나에게 어떤 분입니까? 하느님께서 나에게, 우리에게 진정으로 바라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느님은 완전하시고 결함이 없으시지만 우리 기대와는 다른 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렇게 되어 주셨으면 하고 바라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 자신보다 우리의 깊은 내부를 더 잘 아시고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시고 속마음까지 꿰뚫어 보십니다.(1역대28, 9 참조)
참사랑은 앎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아는 것만 사랑할 수 있으며, 알지 못하면 사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쏟아 부어 주시는 그분의 사랑에 응답하기 전에 먼저 그분이 어떤 분인지 알아야 합니다.
참된 신앙 생활이란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행복이나 성공과는 다릅니다. 자신의 환경이나 삶이 비록 고통스럽고 힘들더라도 하느님의 뜻을 찾아가는 데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처럼 하느님 뜻에 맞게 예배를 드리는 이는 받아들여지고 그의 기도는 구름에까지 올라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히브 5, 7∼9참조)
또한 한때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던 사도 바오로도 참 하느님을 알고 나서 신앙을 고백하며 전 생애를 하느님 사랑을 전하다, 오늘 제2독서 말씀처럼 장렬히 순교 하였습니다.
교우 여러분! 인생은 ‘찰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평화와 기쁨과 사랑을 되찾게 해주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좋은 것과 희망을 주시는 하느님을 찾으십시오. 하느님 사랑의 아름다움은 세상 모든 곳에 존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