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암호
송현 로마노 신부 / 선교사목국 부국장(가정사목 담당)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루카 24, 38) 부활하신 예수님의 존재를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던져진 질문입니다. 현대 신앙인들 역시 이 물음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순 없습니다. 2011년 2월 28일, 프랑스 좥르 파리지앵(Le Parisien)좦 신문은 예견된 결과를 보도했습니다. 전통적인 가톨릭 국가인 프랑스에서 가톨릭 신자로 자처한 이들은 전체의 83%, 그들에게 “하느님의 존재를 믿느냐?”고 물었더니 믿는다는 사람이 36%, 믿지 않는다는 사람이 34%, 나머지 30%는 모르겠다고 답변했습니다. 지난 3세기 동안 공격적인 ‘과학의 제국주의’와 ‘세속적 인본주의’(Secular Humanism)를 겪으면서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혼란에 빠져 고뇌합니다. ‘하느님은 정말 존재하는 걸까?’
우리가 하느님의 존재와 그 말씀을 과학이나 논리학으로 검증하려 든다면, 이는 하느님보다는 논리학과 과학을 숭배하는 꼴입니다. 종교적 믿음은 이성의 표현이나 지성의 동의가 아니라 신념의 표현이요 의지의 행위입니다. 신앙을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성찰의 대상으로 삼는 이들은 끊임없이 성찰만 하다가 결국 신앙인이 되는 궁극적인 지점엔 이르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객관적인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덴마크의 종교철학자 키에르케고르(Kierkegaard, 1813∼1855)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하느님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믿어야 한다.”
인간의 가장 뜨겁고 가장 은밀하고 가장 성스런 소원과 생각은 무엇입니까? 그건 바로 영원한 생명에 대한 사고와 소망, 불사의 존재가 되고 싶은 원의와 마음입니다. 죽고 말 인간 존재 안에서 우린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 너머의 세계와 존재를 희구하며 또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인간은 물리적인 유한성 안에 머물고 있지만 내적 의욕은 영원성을 추구하며 뻗어 나갑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영원성에로 수렴되어가는 ‘하느님의 암호’입니다. 만일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인간은 어떻게 해서든 하느님을 만들어냈을 거라는 무신론적 논리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 똑같은 논리로 답변할 수 있습니다. 만일 하느님이 존재한다 해도, 인간은 어떻게 해서든 무신론을 만들어냈을 것입니다. 실제로 세상은 지금 그렇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의심하는 사람은 주님에게서 아무것도 받을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야고 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