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489호 2018.05.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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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염철호 신부 |
창세기 1장 26절에 하느님께서 직접 주님 스스로를 칭하시며“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하셨는데, 이 구절을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주님의 계시라고 이해해도 될까요?
염철호 신부 /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jubo@catb.kr
성경 전체를 하나의 이야기, 곧 하나의 드라마라고 생각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해석입니다. 모든 드라마가 그러하듯 성경도 한 편의 긴 드라마라고 한다면 당연히 첫 장면에서 모든 정보를 다 제공하지는 않겠지요. 드라마의 앞부분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암시해 줄 뿐인데, 성경의 경우는 하느님의 말씀이나, 예언자들의 예언들, 그리고 여러 사건들이 그러한 역할을 합니다. 이제 앞서 암시된 요소들은 이야기가 진행되며 하나씩 그 의미를 드러낼 것인데, 창세 1,26의“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독자는 이 대목을 읽기 전에 이미 하느님의 영이“우리”에 해당하는 구성원임은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창세 1,2 참조) 그리고 이 성령께서는 구약과 신약을 넘나들며 성경 드라마 전체에서 다양하게 활동하시며, 예수님을 잉태하는데도 큰 역할을 하고 계시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우리”에 예수님도 포함된다는 것은 신약성경을 읽을 때 비로소 알게 되는바 입니다. 신약성경은 육을 취하신 예수님이 바로 태초부터 하느님 곁에 계셨던 말씀, 곧 하느님이었음을 명시적으로 알려주기 때문입니다.(요한 1,1∼18) 이렇게 보니, 신약성경까지 다 읽게 된 독자는“우리”가 삼위일체 하느님을 암시한 것이라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신약의 빛으로 구약의 모든 구절을“다시 읽기”하는 이들이 그리스도인이며, 오직 성령의 인도로 예수님을 주님이라 믿고 고백하는 이들, 곧 구약의 모든 이야기가 예수님께로 귀결된다는 것을 믿는 이들만이“우리”라는 표현에서 삼위일체의 신비를 읽어낼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