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누가 주인공인 것 같습니까?
아들을 사랑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아버지,
돌아온 아들에게 잘못을 묻지 않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신 아버지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집에서 열심히 일을 했고,
아버지의 집이 하느님 나라임을 알지 못하고
돌아온 동생에게 잘해 주시는 아버지를 원망하는 큰 아들이 있습니다.
지난 잘못을 뉘우치고 아버지께 용서를 청하던 둘째 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누가 주인공인 것 같습니까?
아들을 사랑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아버지,
돌아온 아들에게 잘못을 묻지 않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신 아버지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집에서 열심히 일을 했고,
아버지의 집이 하느님 나라임을 알지 못하고
돌아온 동생에게 잘해 주시는 아버지를 원망하는 큰 아들이 있습니다.
지난 잘못을 뉘우치고 아버지께 용서를 청하던 둘째 아들이 있습니다.
우리들 모두에게는
큰 아들과 같은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것은 무관심입니다.
그것은 나와 상관없는 것들에 대한 외면입니다.
그것은 잘못한 이들에게 용서와 관용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단죄하고 심판하는 것입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의 태도입니다.
아버지는
하느님 나라에 있으면서도
언제나 집을 나간 둘째 아들들 생각하였습니다.
그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몸은 비록 하느님 나라에 있었어도
마음은 둘째 아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그것이 관심이며, 그것이 사랑입니다.
첫째 아들의 마음으로 사는 것은
몸은 천국에 있다 해도 천국에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은 멀리 떨어진 특별한 공간이 아닙니다.
천국은 고통 중에 있는 사람, 억울한 사람, 정의를 위해서 투신하는 사람,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들과 함께 희망을 이야기하고,
평화를 이야기하고,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 천국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시작하기 위해서입니다.
글의 출처 : 천주교 서울대교구 성소국장이신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의 묵상글 중에서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시작하기 위해서입니다.
글의 출처 : 천주교 서울대교구 성소국장이신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의 묵상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