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안느와 마가렛

가톨릭부산 2018.02.28 10:22 조회 수 : 108

호수 2478호 2018.03.04 
글쓴이 김양희 레지나 

마리안느와 마가렛
 

김양희 레지나 / 동대신성당, 수필가 supil99@hanmail.net
 

  벌써 삼십여 년 전 일이다. 소록도를 방문했을 때는 천지에 잎새들이 무성할 때였다. 고흥군도 해풍에 씻긴 수목들은 참기름을 바른 듯 반들반들 초록 윤기를 머금고 있어 그곳이 서러운 섬이라기보다는 그저 사슴이 뛰노는 아름다운 섬으로 비치기도 했다.
  본당의 일행들이 소록도에 들어섰을 때 맞은편에서 녹음 가득한 오솔길 사이로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갔다. 차창으로 벽안의 아름다운 두 여인이 행복하게 웃고 있었고 하얀 옷자락이 바람에 스쳐 흔들리고 있었다. 그 신선했던 기억은 영화의 한 장면이 되어 오래도록 선명한 기억으로 남게 됐다.
  그 두 여인이 마리안느와 마가렛이었다. 소록도의 두 천사. 그들은 꽃다운 젊은 나이에 가장 비참하고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 동양의 작은 나라를 택했다. 매일 아침 병원을 돌며 한센인 환자들에게 따끈한 우유를 나눠주고 곪은 상처에 맨손으로 약을 발라주었으니 예수님을 대신한 사랑 그 자체였다.
  1960년과 62년에 각각 한국 땅을 밟은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오스트리아 인스브룩의‘그리스도 왕시녀회’소속 재속회원으로서 종신서원까지 했으나 수녀 대신 간호사로서 봉사의 삶을 선택했다.
  이십대에 소록도 땅을 찾아 이제 팔십대가 된 두 할머니. 낯선 나라에서 아낌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 사십 년 넘게 환자들의 아픔과 외로움을 사랑으로 보듬고는 2005년 어느 날, 편지 한 장을 남긴 채 훌쩍 떠나갔다. 그들의 방에 붙여놓은 서툰 한글로 쓴 좌우명은‘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자’였다.
  드물게 순수하고 품위 있고 겸손했던 사람들, 그들은 어떤 표창이나 시상식에도 결코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전남 고흥군에서는 이들의 봉사정신이 이어질 수 있도록‘마리안느 마가렛 봉사학교’를 설립 중이며 노벨평화상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방송을 위한 제작진들이 오스트리아 그들의 고향을 찾았으나 마리안느는‘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니다’라며 인터뷰를 거절했고, 마가렛은 치매 증세로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더 이상 봉사의 삶이 어려워지자 남몰래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간 두 할머니의 얼굴은 여전히 품위 있는 거룩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나는 두 천사의 숭고한 인생과 우정 앞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최근에는 두 분의 이야기가 책과 영화로도 나오게 됐다. 이들의 삶이 사순절 기간에 작은 위안과 영감으로 남았으면 한다.

호수 제목 글쓴이
2809호 2024. 4. 21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제61차 성소 주일 담화(요약) 프란치스코 교황 
2808호 2024. 4. 14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창식 프란치스코 
2807호 2024. 4. 7  나의 행복 리스트 한미현 에스텔 
2806호 2024. 3. 31  무덤을 허물고 일어나 탁은수 베드로 
2804호 2024. 3. 17  뿌리 찾기와 순교자 손숙경 프란치스카 로마나 
2803호 2024. 3. 10  참 삶의 길 윤경일 아오스딩 
2802호 2024. 3. 3  나에게 새로운 삶을 주신 분 유효정 마리스텔라 
2801호 2024. 2. 25  일상 속 작은 실천 김도아 프란체스카 
2799호 2024. 2. 11  신비롭게 연결되어 있는 인간의 몸처럼 손주희 레지나 
2798호 2024. 2. 10  배우고, 배운 것을 버리고, 새로 배우자! 원성현 스테파노 
2796호 2024. 1. 28.  “없는 이에게 베푸는 일을 미루지 마라.”(집회 4,3) 조수선 안나 
2795호 2024. 1. 21  연중의 삶 속에서 강은희 헬레나 
2794호 2024. 1. 14  새 사제 모토 및 감사인사 file 가톨릭부산 
2793호 2024. 1. 7  일상 가운데 함께 계시는 하느님 박수현 가브리엘라 
2791호 2023. 12. 31  세상을 건강하게 하는 백신, 성가정 우세민 윤일요한 
2785호 2023. 11. 26  제39회 성서 주간 담화 (2023년 11월 26일-12월 2일) 신호철 주교 
2783호 2023. 11. 12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마태 25,13) 최재석 사도요한 
2782호 2023. 11. 5  나만의 고유한 인생길 file 임성근 판탈레온 신부 
2781호 2023. 10. 29  아버지의 이름으로 탁은수 베드로 
2779호 2023. 10. 15  매주 만나는 하느님 나라 김도아 프란체스카 
색칠하며묵상하기
공동의집돌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