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099호 2011.04.03 
글쓴이 정필종 신부 

우리도 눈먼 자라는 말은 아니겠지요?

정필종 도미니코 신부 / 초량성당 주임

여기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삶이 얼마나 고단할지는 두 눈이 온전한 사람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제가 가는 양로원에 그런 할머니가 한 분 계십니다. 올 겨울 유난히 눈이 많이 왔던 날이 있었습니다. 부산 인근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찾아가야’ 볼 수 있는 눈이 아침에 일어나니 온통 하얗게 쌓여 있었습니다. 양로원의 원장이 기쁜 나머지 할머니께 그 소식을 전했습니다. “윤옥 할머니! 밖에 눈이 ‘하얗게’ 쌓였어요!” 할머니가 “그래, 아이고 좋아라!” 그 후에 어떤 가슴 아픈 일이 생길지도 모른 채 서로 손을 잡고 좋아라 했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할머니가 묻습니다. “원장, 그런데 ‘하얀색’이 어떤 색깔인고?” 그러자 원장이 여러 가지 예를 들어 ‘하얀색’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그러다 원장은 울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해도 할머니는 ‘하얀색’이 어떤 색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태어나서 한 번도 ‘하얀색’을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참 가슴이 먹먹해 지는 이야기입니다.

누구보다도 탁월한 감각의 소유자였던 헬렌 켈러는 어느 날 자신의 친구에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눈멀고 귀먹고 말할 수조차 없는 자신이 느낄 수 있는 것 보다 훨씬 덜 느끼는 것 같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멀쩡한 눈을 가지고 있다는 자신감에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건성으로 대하기 쉽습니다. 보고도 보지 못합니다. 아니 보고 싶은 것만 봅니다. 헬렌 켈러의 유일한 소원은 ‘죽기 전에 꼭 사흘 동안만 눈을 뜨고 세상을 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눈을 뜨는 첫 순간 꼭 찾아가 보고 싶은 사람이 자신의 스승이었던 에미 설리반이라고 말합니다. 그를 통해 비로소 자신이 누구와도 다르지 않은 인격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소경이 눈을 뜹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묻습니다. “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 그는 자신의 ‘뜬’ 눈으로 예수님을 보고서 대답합니다. “주님,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몇몇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 되묻습니다. “우리도 눈먼 자라는 말은 아니겠지요?”

교형 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눈을 뜨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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