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정도로 많은 일들이 있었던 한 해입니다. 용산 참사,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 미디어법, 세종시, 4대강 살리기 사업 등등.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되돌아보고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살펴볼 때 공통된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그것은 ‘나를 중심으로 하는 삶’, ‘나 좋자고 사는 삶’, ‘나를 위한 삶’입니다. 물론 인간 본시 자신을 가장 먼저 생각하고, 자신이 중심이 되고,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당연한 모습이지만, 문제는 그 가운데 나 아닌 타인은 배려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삶의 모습이 너무나도 당연해 보이는, 그래서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일이 드물고 특별한 모습이 되어버린 오늘날, 예수님의 성탄은 타인을 배려하는 삶, 타인을 위한 삶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생명체 가운데 유일하게 예수님만이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너를 위해 태어난 첫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만이 자신을 위해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너를 위한 삶을 처음으로 살아내었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셨습니다.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이것부터가 당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구유라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나셨습니다. 당신 자신을 우리의 밥으로 내어주시기 위해서, 그리하여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너를 위한 삶은 나 자신을 낮추는 데서 가능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이 세상에는 나 하나 잘 되자고 사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 아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구유를 바라보는 우리들은, 그런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들은 성탄의 의미를 새기며 다짐해야 합니다. 내 삶의 모습이 나 만을 위한 삶에서 너를 위한 삶으로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 삶 속에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그리고 참된 기쁨과 거룩함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그것이 성탄이 우리에게 기쁨이 되는 이유이고 성탄의 참된 의미인 것입니다.
‘나를 위한 삶’을 사십시오. 그러나 ‘나를 위한 가장 좋은 삶’은 ‘너를 위한 삶’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나 자신을 낮추는 삶’입니다. 그 삶을 살아간다면, 이 세상의 성공이 주지 못하는 기쁨을 느끼실 것이고, 또한 영원한 생명이 주어질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 세상에 왔다.”
우리 가운데 세상을 비추는 참 빛이 오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 빛을 받아 이 세상에서 또 다른 빛의 삶을 살아가도록 합시다. 그리고 아직도 성탄의 기쁨을 느끼지 못하신다면 나 자신 만을 위한 삶, 나 자신 만을 위한 신앙을 하고 있음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신 이 기쁜 날, 여러분 모두의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