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4년.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한국교회의 시작. 뿌듯합니다. 그렇지만 자랑스러운 한국 교회의 역사 안에는 많은 고통과 아픔도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순교자의 탄생을 기준으로 신앙인에 대한 박해는 1791년부터 1879년까지 크고 작은 박해와 특히 네 번(신유박해, 기해박해, 병오박해, 병인박해)의 큰 박해를 겪으면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수많은 순교자가 생겨났고, 그분들의 희생과 순교의 열매로 우리는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어떻게 표현해도 부족하기만한 한국교회의 수많은 순교자들의 신앙의 삶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박해를 피해 숨어야만 했고, 목숨을 내 놓고 하느님을 믿어야만 했던 수많은 순교자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언양지역의 공소와 피신처를 순례해보면 그분들의 신앙이 감동적이고, 내 자신이 부끄럽고, 그러면서 감사도 드리게 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느님을 떠나지 않으려는 결심과, 하느님께 대한 신뢰와 믿음 속에서 하느님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생각으로 신앙생활을 했음을 남겨진 흔적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죽음을 각오하고 지킨 신앙의 대가가 생매장, 참수, 군문효수, 태형 등과 같은 끔찍한 처형이었지만 혹독한 고문과 고통을 당하면서도 하느님을 배신하지 않고 신앙을 지키셨기에 그분들의 증거들의 도움으로 우리는 하느님 곁으로 한발 한발 다가가고 있습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정하상 바오로 성인을 비롯한 한국의 103위 성인들과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순교자들은 ‘내가 한때는 이랬었다.’ 자랑하는 모습이 아니고, ‘훗날 나를 알아주겠지?’하며 결과를 염두에 두고 순교의 삶을 선택한 것도 아니며, 다만 매순간 그리고 갈등의 순간에도 주저하지 않고 하느님 편에 섰고, 신앙을 이어가기에 힘든 상황에서도 하느님의 자녀로서 부끄럼 없이 사신 분이었습니다. 그분들의 삶이 그랬었기에 하느님께서는 죽음 이후에도 축복해 주셨고, 때문에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하는 이들에게 힘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분들의 신앙생활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죽음으로라도 증명하고 싶었던 하느님을 향한 사랑과 수많은 순교자들의 신앙의 고귀함을 우리는 분명히 헤아리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길, 하느님의 자녀로서 삶에 임하는 자세는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다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 곁에서 구원 활동을 하고 계시는 우리나라의 수많은 순교 성인 성녀들, 알려지지 않은 순교자들께 부끄럽지 않는 충실하고 성실한 하느님의 자녀가 되도록 노력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