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473호 2018.01.28 
글쓴이 임성근 신부 

왜 성당에서는 침묵해야 하나요?
 

임성근 신부 / 우동성당 부주임 pantaleon@naver.com
 

  침묵은 오해를 많이 받는 주제입니다. 침묵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뭔가 억압되고 강요받은 것, 할 말이 있는데 참는 것, 불편하고 숨 막힐 것 같은 것, 내가 할 말이 있는데 네가 떠드니까 말 못하잖아, 조용히 해, 불의를 보고 외면하는 것 등. 이 모든 것이 침묵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태도입니다.
  가톨릭 영성에서 말하는‘거룩한 침묵’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입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한 준비나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침묵은 전인적인 행위입니다. 단순히 말과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 정신의 고요함을 뜻합니다. 침묵은 영적인 충만함이 드러난 것입니다. 할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말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 침묵입니다. 하느님만으로 만족하기에, 하느님의 품안에서 온전히 그분의 사랑을 느끼기에, 하느님의 면전에서 당신의 사랑을 말로 표현할 길이 없기에. 그것이 거룩한 침묵입니다. 그러므로 침묵은 능동적이고 자발적이며 자유를 주는 것이고 무엇보다 참 행복한 일입니다.
  어린 시절 주일학교 선생님이 성당에서 조용히 하라고 해서 입을 꾹 다물자 이번에는 성가 왜 안 불러? 하고 야단맞았던 기억이 납니다. 침묵을 단순히 수단으로 생각하면 이런 갈등이 생깁니다. 참된 침묵은 찬양과 조화를 이룹니다. 침묵도 사랑의 표현이고 입을 열어 찬양 드리는 것도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성당 안에서 침묵하면서 그분의 현존을 느껴보시기를 권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당신의 품안으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너희는 멈추고 내가 하느님임을 알아라”(시편 46,11)

번호 호수 제목 글쓴이 조회 수
316 2478호 2018.03.04  죄가 있는 상태에서 성체를 모시면, 모령성체라는 말을 듣고 불안해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성체를 모독한 죄는 고해성사로도 사함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보고 더 불안해졌습니다. 사실 미사 전에 고해성사를 볼 시간이 없어서, 그냥 성체를 영한 적도 많기 때문에 벌 받을까 봐 두렵습니다. 홍성민 신부  319
315 2477호 2018.02.25  요나 4장 1절에서 예언자 요나는 니네베 사람들이 회개하여 하느님께서 재앙을 거두시자 매우 언짢아 화를 내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염철호 신부  119
314 2476호 2018.02.18  요즘에 동계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화해 분위기가 한창 조성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신앙인으로서 자유 민주주의 국가인 우리나라가 무신론을 신봉하는 공산주의의 국가와 한 팀으로 경기하는 것은 반대입니다. 하느님은 당연히 한국 편이지, 북한 편은 아니지 않습니까? 권순호 신부  106
313 2475호 2018.02.11  오늘도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데, 미래는 더욱 캄캄해서 불안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조차 모르겠습니다. 홍경완 신부  152
312 2474호 2018.02.04  천주교는 기도 끝에“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라고 하고 개신교는“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라고 합니다. 의미는 같겠지만 천주교의 표현‘비나이다’의 어감이 왠지 범신론적 신앙대상에게 하는 샤머니즘적 표현 같습니다. 개신교 측 표현이 좀 더 그리스도적이지 않나요? 성경에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지 빌어라(비나이다)는 표현은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장재봉 신부  656
» 2473호 2018.01.28  왜 성당에서는 침묵해야 하나요? 임성근 신부  217
310 2472호 2018.01.21  아이를 키우다 보면 힘들 때가 많습니다. 계속 고집을 피우거나 말을 안 들을 때는 화가 나서 손이 올라가기도 합니다. 그러고 나면 죄책감이 들 때도 있고, 내 성격이 이랬나 싶어서 자괴감이 들기도 합니다. 홍성민 신부  222
309 2471호 2018.01.14  로마서 10장 10절을 보면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우리가 행하는 실천은 구원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건가요? 염철호 신부  265
308 2470호 2018.01.07  성경에 보면, 하느님께 청하면 다 들어 주신다고 했는데, 저는 하느님께 아무리 청해도 원하는 것은 하나도 들어 주시지 않고 권순호 신부  160
307 2468호 2017.12.31  성경을 읽으며 하느님에 대해 상상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런 상상이 위험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상상하는 일이 신앙에 도움이 될까요? 홍경완 신부  129
306 2466호 2017.12.24  본당에서 직책을 피하려는 추세에 사목위원을 맡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군림하려는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장재봉 신부  390
305 2465호 2017.12.17  예전부터 두통이 있거나, 몸살이 오면 진통제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약 없이 못 살 것 같아서 불안합니다. 안 먹어보려고도 했는데, 그러면 통증 때문에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약을 좀 더 쉽게 끊는 방법은 없을까요? 홍성민 신부  132
304 2464호 2017.12.10  무거운 고통이 주어질 때 욥처럼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며 참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현실적이지 못한 말씀인 듯합니다. 참으면 복이 온다는 식의 이야기는 아니겠지요? 염철호 신부  169
303 2463호 2017.12.03  고등학생과 중학생 자녀를 둔 부모입니다. 솔직히 자녀들을 주일학교에도 보내고 신앙 교육도 시키고 싶지만, 당장 대학입시가 더 급하다고 생각합니다. 자녀들이 좋은 대학에도 가고 좋은 직장도 얻고 삶의 안정과 여유가 있을 때, 신앙을 찾아도 되지 않을까요? 권순호 신부  275
302 2462호 2017.11.26  위령성월의 보다 깊은 의미를 묻고 싶습니다. 단순히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하는 시간은 아닌 것 같기 때문입니다. 홍경완 신부  149
301 2461호 2017.11.19  “성경에 명시되지 않은 미사를 거행하는 것은 이단이 아니냐?”는 개신교 신자의 말에 곤혹스러웠습니다. 장재봉 신부  369
300 2460호 2017.11.12  제가 아는 8살 아이가 불치의 병에 걸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어린아이가 무슨 죄가 있어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홍성민 신부  202
299 2459호 2017.11.05  주님의 기도에“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나도 용서받지 못하는 걸까요? 염철호 신부  198
298 2458호 2017.10.29  아들 둘을 키우고 있는 어머니입니다. 큰아들은 공부도 잘하고 항상 제 말을 잘 듣는 반면 둘째는 공부도 못하고 항상 말썽만 부리고 반항만 합니다. 자연히 두 아들을 비교하게 되고, 큰아들에게 애정이 더 가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권순호 신부  436
297 2457호 2017.10.22  지난번에 언급한‘초월적 가치’란 말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습니다. 홍경완 신부  105
색칠하며묵상하기
공동의집돌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