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몰랐더라면...

가톨릭부산 2015.10.12 15:32 조회 수 : 181

호수 2114호 2011.07.17 
글쓴이 정성희 마리안나 

당신을 몰랐더라면...


내가 믿는 신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해 본적이 있습니다. 내가 지니고 있는 십자가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저는 버스로 출퇴근을 합니다. 아침, 저녁으로 텅 빈 버스를 타는 게 소원일 정도로 버스는 늘 만원이지요. 몸이 천근만근 무거운 날엔 잠깐이라도 자리에 앉아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는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어쩌다 빈자리가 생길 때가 있습니다. 야속하게도 항상 노약자용 ‘노란 의자’이더군요. 주변에 노약자가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다음 정거장에서 타게 될 누군가를 생각해 웬만하면 비워두려 노력합니다만 정말 견딜 수 없을 만큼 졸음이 몰려오거나, 다리가 아픈 날엔 자리를 차지하고 맙니다. 마음을 놓고 편히 쉬려는 순간, 나이 지긋한 분들이 버스에 오릅니다. 창 밖으로 고개를 돌리고 시선을 외면합니다. 그때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이 있다면 왼손에 낀 묵주반지입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십자가가 보이지 않게 돌려버립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볼 수 없도록 말입니다.
주변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십자가를 돌리고 있는 저를 보며 깨닫게 되었습니다. 비겁하게 살고자 하는 순간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혼내 주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을 향해 악한 말을 쏟아 내다가도 더 큰 사랑으로 보듬을 수 있는 용기를 주고, 거짓된 표현을 하기 전에 진실로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고, 아무도 내 편이 되어주지 않아 외롭다고 느끼는 순간 가장 따뜻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내 십자가, 바로 ‘주님’이구나.
생활성가 중에 이런 노래 가사가 있습니다. ‘당신을 몰랐더라면 더욱 편했을지도 모르는 그런 세상이지만, 당신을 알게 됨으로 얻은 자유 평화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네.’ 사람들을 만나고 살아감에 있어 신앙이란 크게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천주교 신자라는 것도 굳이 알릴 필요가 없지요. 하지만 저는 하느님의 향기를 전하기 위해 살아가는 ‘신앙인’입니다. 제가 지닌 십자가는 그 사실을 잊어버리려 할 때마다 정신이 ‘번뜩!’ 들도록 저를 도와줍니다. 세상을 더욱 따뜻하게 바라 볼 수 있게 이끌어 주는 내 십자가가 오늘따라 참 고맙게 보입니다.
오늘도 저는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합니다. 늘 반복되는 소소한 일상 속에서 하느님을 느끼고 전할 수 있는 훈훈한 신앙인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정성희 마리안나 (안락성당)

번호 호수 제목 글쓴이 조회 수
» 2114호 2011.07.17  당신을 몰랐더라면... 정성희 마리안나  181
310 2366호 2016.01.24  “내게 가까이 오너라. 내 배움의 집에 묵어라.”(집회 51,23) 이동화 신부  179
309 1967호 2008.11.30  언어치료를 통한 주님 사랑의 실천! 언어치료실  179
308 2487호 2018.05.06  2018년 성가정 축복미사 가톨릭부산  175
307 2403호 2016.10.09  부산가톨릭선교마라톤회, 창립 10주년을 맞이 하면서 김봉출 로마노  175
306 2094호 2011.02.27  따뜻한 이별의 정거장 안윤문 베아드리체  172
305 2261호 2014.02.23  아버지의 망토 박정열 발다살  169
304 2446호 2017.08.06  행복한 신앙생활과 내적성화에 도움을 주는 영성심리상담사 과정을 들으면서... 장제원 엘리사벳  168
303 2426호 2017.03.19  삶의 길벗, 함께 하는 인문학, 제21기 인문고전대학 김영규 신부  167
302 1966호 2008.11.23  제20회 부산 가톨릭 문예 작품 공모전 발표 문인협회  167
301 2289호 2014.08.31  아빠의 자리, 남편의 자리 김인식 사도요한  164
300 2394호 2016.08.07  예비신학교 상반기 프로그램 독서감상문『하느님의 꿈쟁이 요셉』을 읽고 박현 빈첸시오  162
299 2314호 2015.02.08  새 사제 다짐·감사 인사 (2) 전산홍보국  160
298 2422호 2017.02.19  “문화화 되지 않은 신앙은 온전히 수용되지 못하고, 철저히 숙고되지 못하고, 충실히 실천되지 못한 신앙입니다.” 박종주 신부  156
297 2349호 2015.10.11  “찬미받으소서”사회교리학교 주제강좌에 초대합니다. 교구 정의평화위원회  156
296 2120호 2011.08.21  빵 하나와 커피 한 잔을 넘어 임미화 에딧타  155
295 2107호 2011.05.29  '바다의 별' 해양사목 해양사목  155
294 1982호 2009.03.01  가톨릭센터를 아시지요 임석수 신부  155
293 2364호 2016.01.10  새 사제 다짐·감사 인사 가톨릭부산  153
292 2076호 2010.11.14  제22회 부산 가톨릭 문예 작품 공모전 입상자 주보편집실  151
색칠하며묵상하기
공동의집돌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