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감수성의 훈련(2)
김상효 신부 / 신선성당 주임 airjazz@hanmail.net
부자와 라자로 이야기(루카 16, 19∼31 참조)에서 부자는 라자로를 알아보지 못한다. 자신이 매일 드나들던 집 대문에 라자로가 있었지만 부자는 알아보지 못한다. 부자는 자신의 문화 속에 갇혀 있는 사람이다.“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루카 16, 19) 살고 있는 부자는 자신의 문화가 스스로를 가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는 자신의 문화를 잘 향유하고 사는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문화에 경도된 나머지 그것 너머에 존재하면서 강렬한 눈빛으로 손을 내밀고 있는 다른 문화의 메시지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 부자의 나중 운명이 어떠했는지는 우리가 잘 알고 있다.
문화 복음화의 해를 보내고 있다. 복음의 메시지를 담아낼 그릇으로서의 문화, 혹은 복음의 메시지를 실어 나르게 될 매체로서의 문화에 대한 고민들이 우리의 숙제로 등장하고 있고,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문화들에 대한 윤리적 평가, 혹은 선도가 우리의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우선적 고민은‘알아듣기’여야 할 것 같다. 복음을 전할 적당한 매체로서의 문화를 가지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세상의 문화와 문화의 메시지를 알아보지 못하게 될 것을 두려워해야 할 것 같다. 우리가 너무 멀리 가버린 건 아닌지, 우리가 너무 강력한 문화를 소유하고 있어서 그것이 우리의 감옥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그래서 혹시 우리가 못 알아보는 부자가 되어버리지는 않았는지 그것이 우리의 우선적 고민이 되었으면 좋겠다.
* 질문 : 우리 집 대문간을 스쳐 가는 수많은 라자로들의 시선을 들여다본 적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