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절‘평화의 마을’에 부임한 지 2년 반이 되어간다. 아침에 지저귀는 산새 소리와 사시사철 이름 모를 야생화와 자연이 내어주는 과일과 채소들을 맛볼 때면 그래도 도심 속 본당보다 자연 속에 더 가까이 살고 있음에 감사를 드린다.
그러나‘평화’와 반대로 이곳 가족들은‘불화와 불목’을 대표하는 영혼과 육신의 처절한 몰골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평화’라는 말과는 정반대의 삶을 지금까지 살아왔지만, 그들 여생은 천지가 변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평화’와는 너무나 다르게 살아가야 하는 운명의 사람들이다.
하루하루 고통이 엄습해오는 중병들, 결코‘희망’이란 삶의 언어들과 만남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 알 수 없는 중얼거림을 쉬지 않고 하는 사람들, 그리고 실향민처럼 가족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
이런 상황에서 사제로서 매일 미사를 마칠 때면“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라고 반복하지만, 그들은 과연 어디에서‘기쁜 소식’을 전하여야 할까?‘복음을 전하자!’는 사제의 목소리는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오고, 그들 대부분이 또다시 마을의 마당에서 어제처럼 배회함을 볼 때면 우리들 종교의 존재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를 깊게 고민하게 된다.
가톨릭교회에서 우리 믿음의 롤모델은 당연 성모 마리아이다. 이런 마리아의 영성은 바로‘참·기·쁨’이 아닐까?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한 첫 인사말도‘기뻐하십시오’라는 말이었고, 마리아의 노래에서도“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렙니다.”라고 노래하고 있다.
향락적이거나 일시적이며 이기적이고 쾌락이나 즐거움과는 전혀 다른 마리아의 이 기쁨을 교회는 오늘을‘성모 승천 대축일’로 지정하여 성대하게 기뻐하며 기억한다.
이곳 마을에는 부모와 그 자녀들이 찾아와 밀린 일감에 힘을 보태고, 인근 도서관과 야외로 나아가 나들이 봉사해주시는 분들이 많다. 20여 년 이상 목욕 봉사를 해주시는 레지오 단원들, 이미용 봉사를 해주시는 고마우신 분들, 한 푼 한 푼 저금통과 계좌로 도움을 주시는 고사리손부터 쌈짓돈을 내어주시는 어르신들, 아픈 곳을 섬세하게 돌봐주시는 의료인들.
가난한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는 기쁨의 사람들이 이 시대 성모님의 영성으로 실천하는 이들이 있기에‘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그냥 단순한 소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명감을 다시 한번 깊게 가져본다. 그래서 오늘도 마을가족들을 생각하고 고마우신 분을 기억하며 이렇게 기도한다.“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들을 위해 빌어주소서.”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