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240호 2013.10.20 
글쓴이 홍성민 신부 

주위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데도 여러 가지 불행한 일들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하느님을 믿어도 불행한 일을 막을 수 없고, 기도를 열심히 해도 바라는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기도는 왜 하고, 성당에는 왜 가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홍성민 신부(부산가톨릭대학교) parvus@hanmail.net

만일 하느님께서 당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원하는 일을 이루어주시고, 피하고 싶은 일은 막아주시는 분이시라면, 하느님에 대해 의심이 들고, 신앙에 대해 실망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불행을 막는 부적이 아니시고, 나의 심부름꾼이 아니십니다.

믿음은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는 희망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믿음입니다. 나를 사랑하시기에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셨으리라고 믿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 내 눈에는 나를 힘들게만 할 뿐이고, 고통 이외에 아무런 의미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라고 해도, 믿음 안에서 ‘하느님은 과연 이것을 통해 내가 무엇하기를 바라실까?’하고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앙의 눈은 삶의 고통에 새로운 의미를 가져다 줍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마태 16, 24)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더 크고 더 많은 십자가를 주고자 하심이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십자가는 있습니다. 고통 없이 사는 사람이 없고, 상처받지 않은 삶은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피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사랑하기 위해 받아 안고, 용서하기 위해 다시 껴안는다면, 그 십자가의 자리는 죽음의 자리가 아닌 부활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신앙은 고통을 피해 가는 힘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 죽지 않고 오히려 새롭게 사는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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