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 2179호 2012.09.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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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홍경완 신부 |
동료로부터 가톨릭은 미사 전례를 비롯한 모든 기도가 지나치게 형식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는데, 제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아 대꾸조차 못했습니다.
홍경완 신부(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mederico@cup.ac.kr
흔히 사용하는 단어 중에 원뜻과는 다르게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말들이 꽤 있습니다. ‘형식적’이라는 말 또한 그렇게 저평가되는 말 가운데 하나로 여겨집니다. 이 말은 ‘내용은 빠져버리고 빈 껍데기만 남아있는’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곤 합니다. 그러면서 ‘형식’마저 무시해버리고자 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형식’의 반대가 ‘내용’입니다. 내용이 ‘담겨 있는 무엇’이라면, 형식은 그 무엇을 담는 그릇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릇이 없으면 아무것도 담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빈 그릇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유명한 말처럼 ‘내용 없는 형식은 공허하고, 형식 없는 내용은 맹목’입니다. 형식도 내용도 모두 그 어느 것 하나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것들입니다. 문제는 담겨있는 것보다 담을 그릇에만 집착할 때 생겨납니다. 그렇게 되면 내용은 빠져버리고 형식만 남아 ‘형식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전례나 기도의 내용은 외면하고 형식에만 젖어있을 때 형식적이 됩니다. 그렇다고 형식 그 자체마저 무시해서는 곤란합니다. 새가 좌우 두 날개로 날듯, 신앙생활 역시 형식과 내용의 두 날개를 필요로 합니다. 미사라는 형식이 없었다면, 성체성사의 내용 역시 온전히 보존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