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2172호 2012.08.05 
글쓴이 권순호 신부 

성경에 보면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성당에 오면 십자가나 성물에 예수님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 왜 예수님의 말씀과 달리 성당에서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믿게 하려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권순호 신부(남산성당 부주임) albkw93@hotmail.com

개신교에서는 천주교 신자들이 예수님이나 성모님 상 앞에서 기도를 하는 것을 보고 우상숭배라고 비판을 하곤 합니다. 하느님은 절대자이자 영적인 존재이시기 때문에 세상의 어떤 보이는 것도 그분을 나타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만지고 싶고, 보고 싶고, 감촉을 느끼고 싶은 나약한 인간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 눈높이에 맞추어 보이지 않는 자신을 보이는 것을 통해 드러내십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온전히 세상에 드러낸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사랑은 바로 상대방을 위해 기꺼이 눈높이를 맞추고 낮추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눈높이 사랑의 가장 극적인 표현입니다. 가톨릭교회의 성사들과 많은 성물은 바로 예수님에게서 절정을 이룬 하느님의 눈높이 사랑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특히 일곱 가지 성사를 통해 물, 기름, 빵과 포도주같이 우리가 만지고 경험하는 일상의 물질과 일상의 사건들이 바로 하느님을 드러내고 보여주는 것임을 믿게 됩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 자신이 또한 이웃에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과 그의 사랑의 드러내는 성사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비천한 피조물 가운데 내려오시어 하느님을 몸소 보여주시고 하느님의 사랑을 만지고 느끼게 해주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게 내려가 그들에게 하느님의 현존과 사랑을 보여 주고, 느끼게 해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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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 2274호 2014.05.25  성경을 읽어보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할 것임을 알면서도 그 길을 걸어가셨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죽는 줄 뻔히 알면서 그 길을 피하지 않고 계속 가셨다면, 그것은 간접적인 자살행위가 아닙니까? 제가 알기로는 교회는 자살을 금지하고 있는데,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간접적 자살로 교회의 가르침과 상반되는 것이 아닙니까? 권순호 신부  202
235 2276호 2014.06.08  교리시간이나 강론에서는 주님께서는 인간의 나약함을 알고 계심으로 모든 죄를 기꺼이 용서해 주신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죄를 짓더라도 죄의식을 갖지 않고 기쁘게 살아가는 편이 훨씬 복음적이지 않습니까? 장재봉 신부  98
234 2277호 2014.06.15  신앙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기가 무척 힘이 듭니다. 현실은 많은 경우 적당히 타협도 하고 불의도 눈감아 주면서 살아가길 요구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지식한 사람, 완고한 사람으로 따돌림을 받기도 합니다. 신앙의 가르침을 따르며 살고 싶은데 고지식하고 완고하다는 소리를 듣기는 싫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홍경완 신부  72
233 2278호 2014.06.22  개신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한 신자인데요. 천주교에서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을 너무나 강조하는 것 같아 어떨 때는 마음이 불편합니다. 솔직히 성모 마리아에 대한 천주교의 가르침은 성경에도 거의 나오지 않는데, 후에 사람들이 지어낸 것이 아닌지 의심이 됩니다. 권순호 신부  243
232 2279호 2014.06.29  대학생 딸이 음식을 많이 먹은 뒤, 화장실에 가서 토하곤 합니다. 밤에 혼자 엄청난 양의 음식을 먹고는 토하고, 다음날 또 그럽니다. 요즘 많이 예민해져 있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홍성민 신부  276
231 2280호 2014.07.06  ‘가정 복음화의 해’를 맞아 본당에서는 혼인갱신식 참여를 강력히 권합니다. 하지만 성당에서 혼배미사를 올렸고 혼인신고도 마쳤는데 꼭 갱신식을 할 필요가 무엇인지 의문입니다. 개인적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날짜도 아니고 쑥스럽고 민망스럽기만 합니다. 장재봉 신부  185
230 2281호 2014.07.13  같은 하느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면서도 오히려 비신자보다 못한 모습으로 우리 교회에 먹칠을 하는 사람을 보면 속이 상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답답합니다. 홍경완 신부  125
229 2282호 2014.07.20  흔히들 개신교 신자들에게 천주교는 성모님을 믿는 종교라는 오해를 받곤 합니다. 그런데 제가 봐도 지나치다 싶을 만치 과도하게 성모신심에 빠져 있는 신자들을 보면, 그런 오해도 살만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천주교는 다른 성인들과 다를 바 없는 인간인 마리아를 너무 신격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권순호 신부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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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 2284호 2014.08.03  “프리메이슨”이라는 단체가 무엇입니까? 유럽의 교회가 그 영향으로 잘못된 길에 들어섰던 연유도 알고 싶습니다. 장재봉 신부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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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 2288호 2014.08.24  신부님, 저는 미사 시간에 주로 눈을 감고 집중을 합니다. 그런데 성찬례 때도 눈을 감고 하는데 이것이 틀린 건가 싶어서요. 사실 눈을 뜨고 하니 사람들의 움직이는 여러 가지 것들에서 분심이 생기더라구요. 장재봉 신부  145
223 2289호 2014.08.31  대학생 아들이 성당에 다니지 않으려 합니다. 하느님은 믿지만 그렇다고 꼭 성당에 다녀야만 하느님을 믿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따지는데 답을 못했습니다. 홍경완 신부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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