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강론)
운수대통의 새해
1월 1일이 왜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일까요? 새해 첫날을 성모님께 봉헌하기 위해서 그럴까요? 전혀 아닙니다. 우리 천주교 신자들은 세속 달력이 아니라 전례력을 봐야 합니다. 12월 25일이 무슨 날입니까? 주님 성탄 대축일이지요. 바로 이날부터 7일을 손꼽으면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이 됩니다. 공교롭게도 그날이 새해 첫날과 항상 겹치는 것이지요. 예수님과 성모님의 관계는 실과 바늘과 같습니다. 항상 붙어 다닙니다. 5월이 성모성월이지요? 6월은 바로 예수 성심성월입니다. 이처럼 주님 성탄 대축일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은 서로 밀접합니다. 어쩌면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은 주님 성탄 대축일에 대한 부연 설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 이게 무슨 말이냐? 먼저 성탄은 성자 하느님께서 육을 취하시어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오신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마찬가지로 천주의 성모라는 수식은 성자 하느님이 마리아를 통해서 인간으로 태어나셨다는 것을 전제하며, 따라서 예수님 안에는 인성과 신성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초대 교회는 예수님을 신이 아니라 인간으로만 보는 이단과 반대로 예수님을 인간이 아니라 신으로만 보는 이단에 맞서 싸워 왔습니다. 그리고 4세기에 이르러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을 통해서 참 하느님이며 참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교리를 확립합니다. 그렇게 보면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은 성모님을 위한 날이 아니라 강생하신 예수님을 위한 날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오늘 우리는 성모님의 신앙을 되새겨야 합니다. 마리아는 모든 신앙인의 모범이며 교회의 어머니가 되십니다. 자, 그렇다면 성모님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무엇일까요? 단연 순명입니다. 그런데 순명을 한자로 풀어보면 따를 順에 명령할 命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명령할 命자입니다. 갑골문자로 命자를 분석하면 상단에 피라밋 모양의 문자는 신전을 상형화한 것입니다. 신전은 하늘을 상징하고 있지요. 그 밑에 왼쪽에는 입口자입니다. 즉, 목소리 혹은 말씀을 뜻합니다. 이 둘을 합치면 하늘의 소리, 즉 하느님의 말씀이 됩니다. 관건은 마지막 갑골문자인데 마치 뱀巳자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사람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자, 이제 命자의 숨은 뜻이 밝혀집니다. 천명(天命), 곧 하늘의 명령을 무릎을 꿇고 받드는 것입니다. 우리식대로 하면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보다 명쾌한 순명에 대한 풀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한편 라틴어로 순명을 submissio라고 하는데, 여기서 sub은 천치사로 ‘아래’라는 말이고, missio은 사명, 임무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순명은 하느님이 주신 사명을 엎드려 받드는 것을 말합니다. 한자말이나 라틴어나 다 같은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성모님은 무엇에 순명하셨습니까?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하셨습니다. 그 하느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동정 잉태를 통한 구세주의 탄생이 아닙니까? 그것이 마리아의 천명이었고 운명이었던 것입니다. 마리아의 순명은 곧 세상에 생명과 빛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명은 아들 예수님께로 이어져 결국 십자가 희생 제사라는 또 다른 순명으로 결실을 맺게 됩니다. 성부 하느님께 대한 성모님과 예수님의 순명으로 세상에 구원이 오게 되었습니다. 이보다 더 큰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단 한 번의 순명으로 마리아는 모든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어 구세주의 모친이라는 영예를 얻게 되었습니다.
자, 그럼 참된 성모신심은 무엇입니까? 성모님을 닮는 것입니다. 성모님을 모방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순명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 하느님의 계획, 하느님의 뜻, 하느님의 명을 신명을 다해 받들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는 구세주의 탄생을 두고 일어난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고 했습니다.(루카 2,19) 곰곰이 되새긴다는 말은 그 신비를 묵상한다는 말입니다. 성탄은 마리아에게 위기였고 모험이었습니다. 두려움과 긴박함, 그리고 비참함이 구세주 탄생의 전모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것을 불행이라 생각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이자 계획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보통 인간은 일신의 안락과 행복을 위하여 쓰면 뱉고 달면 삼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것이 입에 쓰더라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입니다. 아니 천명이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내가 당연히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고 가시밭길을 선택합니다. 놀랍게도 성모칠락은 성모칠고에서 비롯됩니다. 즉, 복되신 동정 마리아는 통고의 성모이십니다.
새해가 되면 우리는 서로에게 복을 빌어줍니다. 서양 사람들도 ‘Happy New Year!’이라고 인사하지 않습니까? 동양의 복이나 서양의 행복이나 다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살다 보면 인생이 다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지요. 때로는 예기치 못한 불행도 우리 삶의 일부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좋은 것이든 아니든 하느님께서 구원의 길로 이끌어 가신다고 믿습니다. 길흉화복을 점치고 운수대통을 바라는 세속인들과 우리는 다릅니다. 내가 하느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묵상하고 그것에 순명하면 모든 것이 다 복의 원천이 됩니다. 몸보다 영이 더 중요합니다. 육신의 운수가 아니라 영신의 축복을 희망해야 합니다. 우리는 마리아에게서 그 방법을 배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