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주님 성탄 대축일 낮 미사 강론)

 

한 처음

 

성경을 우리는 구약과 신약으로 구분합니다. 그런데 옛 자는 오래된혹은 낡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구약성경을 미완의 책이거나 심지어는 폐기되어야 할 책으로 보는 경향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 성경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는 구약을 첫 번째 성경, 신약을 두 번째 성경으로 말해야 한다고 합니다. 신약과 구약은 상호 등급을 매길 수 없을 만큼 다 귀중하며 기록된 시기만 다를 뿐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일치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게 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요한복음의 서문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창세기를 연상시키는 대목들이 많습니다.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요한 1,1) 창세기를 볼까요.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창세 1,1) 그리고 뒤이어 모든 창조 때마다 공통적으로 반복되는 문장이 있으니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입니다. , 창조는 하느님 말씀으로 이뤄진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보자면 구약의 하느님 말씀은 곧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지요. 삼위일체 신비 안에서 창조주 하느님과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는 본질적으로 같으신 분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구약의 모든 말씀을 성취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히브리서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려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 이 마지막 때에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히브 1,1-2)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말씀 그 자체이십니다.

 

주님 성탄 대축일에 늘 우리는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는 말씀을 듣습니다. 여기서 사셨다는 동사는 직역하면 천막을 치셨다.’입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아브라함 할아버지 때부터 모세의 광야 40년 생활에 이르기까지 천막 안에 머무르셨던 하느님이 이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다시 우리 삶의 천막 안으로 깊숙이 들어오심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 복음사가의 말대로 육화 사건은 은총과 진리,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자리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하고 은혜로워해야 합니까? 이제 세상에 구원의 빛이 왔고, 우리는 그 빛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기쁜 성탄에 한 가지 우리를 고개 숙이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주님은 오실 준비가 끝났는데, 아직 우리는 그 준비를 마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대림 시기를 지냈지만 여전히 우리 안에는 어둠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은 다시 한번 우리의 영적인 상태를 일깨웁니다.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요한 1,10-11) , 생명을 주신 분을 몰라보고, 땅의 주인을 거절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을 선사하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가장 사랑하는 외아들을 보냈지만 그 후손들은 그 외아들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일종의 배은망덕입니다. 참 슬픈 일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말씀을 거절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그와 같습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빛이 환하게 비치고 있어도 내가 그 빛을 거부하며 암실로 들어가면 빛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 암실이 무엇인지 잘 묵상해 보십시오. 지금이라도 우리는 그 암실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참 빛이신 그리스도를 보아야 합니다.

 

내년에는 교구 사목 지침에 따라 성경에 맛 들이고 말씀을 살아내는 여정을 걷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무려 60 여분이 성경 40주간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주셨습니다. 너무나 기쁩니다. 부디 말씀이 육화될 수 있도록 읽고, 공부하고, 묵상하며, 실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교는 말씀의 종교입니다. 말씀 없이는 성사도, 전례도, 기도도 힘이 없습니다. 3월부터 시작되는 성경 40주간, 아직 시간이 있으니 더 많은 신청 부탁드립니다.

 

말씀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오늘, 여러분 가정에 아기 예수님의 축복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해마다 찾아오는 성탄이지만, 내가 말씀이신 주님 안에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그 성탄은 그저 지나가는 이벤트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마음과 삶 안에서 아기 예수님께서 방긋 웃을 수 있도록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여 봅시다. 부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 참된 용서와 화해, 사랑과 평화가 가득한 성탄절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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