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강론)

 

성탄의 신비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주님 성탄은 역사 속에서 전 인류가 기억하고 축하하는 가장 위대한 한 장면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오래전 구세주의 탄생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 왕권이 그의 어깨에 놓이고, 그의 이름은 놀라운 경륜가, 용맹한 하느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군왕이라 불리리이다.”(이사 9,5) 그러나 구세주는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 사건을 역사의 무대 위에 가장 중심부에 올려놓습니다. 우선 그리스도의 역사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복음은 당시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두 명의 위정자를 등장시킵니다. 첫 번째 인물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이고, 두 번째 인물은 그가 파견한 시리아 총독 퀴리니우스입니다. 이 시간 그들의 행적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구세주께서 세속 권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가련한 백성으로 탄생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온 누리의 임금이신 그리스도께서 인류 구원을 위해 얼마나 자신을 낮추셔야 했던가를 묵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타인을 위해서, 그것도 죄인들을 위해서 자신의 권위를 내려놓고 모욕과 수치를 당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가요? 오히려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타인을 비방하고 죄인을 심판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성탄을 통해 참된 겸손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겸손이 결국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맺었던 계약 성취의 마중물이 됩니다. 오랫동안 예언자들은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고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고향은 본래 베들레헴이 아니고 나자렛입니다. 그의 부모가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 출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칙령으로 온 유다에 호적 등록이 이루어집니다. 알다시피 양부 요셉은 다윗 집안의 후손으로서 본적은 베들레헴에 있었고, 그 덕에 요셉과 마리아는 베들레헴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때마침 마리아는 만삭이었고 해산이 임박했지만 안타깝게도 숙소를 구하지 못하여 성 밖 외딴 마굿간에서 아기를 낳게 됩니다. 이 과정을 우리는 목가적으로 아름답게 상상합니다만, 실제 마리아와 요셉은 긴박했고 비참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계약의 성취를 위한 하느님의 놀라운 섭리가 마리아와 요셉의 수고와 희생으로 완성됩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벌거벗음을 또 묵상하게 됩니다. 임금이신 구세주께서 왕궁이 아니라 축사에서 탯줄을 끊으시고, 요람이 아니라 구유에 신세를 져야 했던 것입니다. 루카 복음은 자신의 백성들에게 외면당하신 임금의 벌거벗음을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루카 2,7) 아무리 호적등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하지만 시골 출신의 젊은 부부가 만삭의 몸으로 숙소를 구하고 있을 때, 만일 그들의 아기가 구세주였음을 알았더라면 문전박대 했겠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철저하게 인간에게 버림받았던 하느님의 비참함과 굴욕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을 사랑하기 위해서, 또 구원하기 위해서 아기로 오신 하느님을 우리는 거절했습니다. 만일 지금의 우리도 상황이 절박한 누군가의 도움을 거절한다면 이 역시 아기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끝으로 구세주의 표징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라고 천사가 목자들에게 전해줍니다. 성안의 사람들은 구세주를 밀어내었지만, 성 밖의 사람들, 즉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은 구세주의 탄생을 목격하는 영광을 차지합니다. 성안의 사람들은 임금, 귀족, 사제, 평민들로 구성된 나름 먹고 살 만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성 밖의 사람들은 목자를 비롯한 가난한 하층민들입니다. 역설적이게도 구세주는 성 밖의 사람들에게 먼저 나타나셨습니다. 구세주의 탄생은 인간의 모든 취약성을 대변합니다. 부모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기였고, 자칫 출산 과정에서 죽을 수도 있는 비상 상황에서 자신을 위험에 노출시켰습니다. 오로지 그를 반긴 것은 축사의 가축들과 들판의 목자들이었습니다. 가난하고 취약한 이들이 먼저 하느님을 만납니다. 이 진리를 후에 성장한 예수님께서 공생활 중에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마태 11,25-26)

 

오늘 밤 우리가 묵상해야 할 주제는 세 가지입니다. 하느님의 겸손과 가난, 그리고 취약성입니다. 하느님은 이 세 가지를 살기 위해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 최종목적은 인간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낮아지셨고, 가난을 택하셨으며,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모든 것을 감싸 안습니다. 또 그 사랑은 모든 것을 환히 비춥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처럼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이사 9,1) 그래서 성탄의 밤은 거룩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천사들과 함께 큰 소리로 노래합시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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