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아 평의회 훈화(2025.12.7.)
창조주로서의 책임의 무게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시편 8, 5)
저는 아름다운 이 시편을 읊을 때마다,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느낍니다. 감동 그 자체입니다. 죄인이자, 흠 많은 저를 향한 하느님의 끊임없는 신뢰와 사랑은 저에게 따뜻함입니다. 하느님의 이러한 조건 없는 사랑을 경험한 분이라면 제 말의 의미를 잘 아실 겁니다. 그래서인지 무의식적으로 이 구절을 입술로 읊고 있는 저를 가끔 발견합니다. 아마도 그분의 사랑이 그리워서겠지요.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이토록 그리워합니다.”
(시편 42, 2)
그런데 오늘 저는 이 말씀 안에서 새로운 보물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왠지 모를 안쓰러움, 그래서 더욱 감사함을 느낍니다.
그것은 ‘창조주의 책임감’ 그리고 ‘그 무게감’입니다.
한때 인간은 하느님께서는 창조만 할 뿐, 인간을 방치하는 무책임한 창조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창조에는 피조물의 가치만큼의 책임감이 따릅니다. 인간의 자유의지와 행동에는 그만한 책임이 따르는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무한한 사랑’으로 낳은 인간과 세상을 당신의 ‘무한한 책임’으로 보호하시고, 구원해 주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달리 ‘사랑’이라고도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처절하고 애달프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당신의 사랑(책임)을 알아주지도 않는 피조물! 그러나 끝까지 사랑하고 마는 창조주로서의 책임! 젖먹이에게 젖을 물리는 것을 잊는다더라도, 결코 잊지 않으시는 우리의 사랑이신 분!(이사 49, 15 참조) 예수님의 십자가 무게도 이러하겠지요. 창조주로서의 하느님의 책임의 무게와 같은….
오늘 저는 하느님께 이 말 외에는 할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