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대림 제1주일 강론)
깨어 있음
(꿈 이야기: 버스 기사 교황님)
대림 시기 첫 주일 복음 주제는 항상 ‘깨어 준비하고 있어라’입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깨어 있다는 말은 의식하고 있다는 말이고, 이는 사랑할 때 가능한 일입니다.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에게 온통 관심이 가 있습니다. 성경의 비유처럼 신부가 신랑을 밤새 깨어 기다리는 것과 오늘 복음처럼 종이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니 깨어 기다리는 것도 모두가 사랑할 때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사람만 그렇겠습니까? 어떤 대상에 빠지게 되면 일이든 물건이든 온통 시선이 거기에 늘 머물러 있게 되는 것이지요. 성탄을 준비하는 대림 시기도 사실은 주님을 애타게 사랑으로 기다리는 것 외에는 다른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아니라 다른 것에 시선을 빼앗기게 되면 ‘깨어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잠자고 있는 것’이 되고 맙니다. 연말이라 온 세상은 축제의 분위기로 가고 있는데 우리의 시선은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돌아보는 대림 제1주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주님을 사랑으로 기다릴 수 있을까요? 오늘 전례 독서가 그 답을 말해 줍니다. 우선 제 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야곱의 집안아, 자,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라고 말합니다. 주님의 산은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제물로 바쳤던 모리야 산이고, 거기에 훗날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집니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지켰던 그 장소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온 민족들이 모여들어 평화의 나라를 이룹니다. 신약의 하느님 백성인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그리스도는 골고타 언덕에서 희생 제물로 바쳐지셨고, 그 자리에서 예루살렘 모교회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사도들로부터 복음이 선포되고 성령 안에서 온 민족이 하나 되며 주님의 평화가 이룩됩니다. 구약의 야곱의 집안이 주님의 빛 속을 걸어가듯이, 신약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빛 속에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서 빛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제 2독서 로마서는 구원이 임박한 때에 잠에서 깨어나 빛의 자녀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밤이 물러가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나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 있게 살아갑시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로마 13,12-14)
잘 알다시피 로마서 13장 13절(집어서 읽어라)의 이 말씀을 듣고 한때 타락하고 방황하던 성 아우구스티노는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세례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훗날 히포의 주교이자 서방교회의 위대한 신학자로 변모합니다. 대림 시기 사랑하는 주님을 깨어 기다리면서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절제와 기도입니다. 애주가와 주정꾼의 차이는 간단합니다. 분위기를 화목하게 만드느냐 아니면 분위기를 개판 오분 전으로 만드느냐입니다. 만취 후 깨고 나서 만일 지난 술자리에 대한 후회와 자책감이 든다면 알콜 중독 단계입니다. 상담과 치료가 필요합니다. 대림 시기 항상 술을 마시고 문제를 일으키는 분들은 절주하시기 바랍니다. 또 한편 기도하지 않으면 쉽게 육이 주는 욕망에 빠지게 되고, 마음속에서 불순한 것들이 올라와 영적인 시야를 가리게 됩니다. 결국 탐욕과 싸움, 시기 질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중독에는 술과 도박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났다 하면 사소한 일로 시비 붙고 끝장을 보려 하고, 남이 잘되면 시샘하고 남이 없는 자리에서 뒷담화하고, 이미 가지고 있으면서 끊임없이 욕심을 부리는 것 또한 중독입니다.
다음 주면 세례식입니다. 여러분들이 신영세자들의 모범이 되기를 바랍니다. 초대교회 때는 세례를 쉽게 주지 않았습니다. 예비신자 교리 기간이 3년이었고, 회개의 삶이 증명되지 않으면 후보자에서 탈락되었습니다. 가정적으로, 직업적으로, 사회적으로 평이 좋아야 하고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없어야 통과되었습니다. 교리를 배우는 3년 기간은 그야말로 혹독한 훈련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미사 때에도 예비신자들은 말씀의 전례에만 참여하고 성찬의 전례에는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모시는 그 자체가 신비였기 때문에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그들에게 노출시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특강 때도 말씀드렸지만 주님의 기도도 세례를 받으면서 수여했습니다. 아직 주님의 기도를 실천할 수 없는 훈련받지 못한 그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외우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던 겁니다. 그렇게 엄격했습니다. 그리고 견진은 세례 후 신비 교육 과정을 통해서 주님의 말씀을 깨닫고 성사의 신비를 체득한, 그야말로 충분히 준비된 신영세자들에게만 허락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너무 쉽게 다 받습니다. 그러니 얼마 가지 못 해 냉담에 들어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대림 시기 모든 평일미사 25분 전부터 대침묵 기도에 들어갑니다. 성경필사, 실천표 스터커 붙이기, 찰고지 풀기 같은 이벤트성 프로그램은 이번에는 없습니다. 어르신들은 이 본당의 어른이자 신앙의 선배들입니다. 그러니 맨 앞자리부터 앉으시고 절대 침묵을 지켜주십시오. 그래야 동생들이 배울 것입니다. 성전에서 신발 소리도 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외적 침묵은 내적 침묵을 지향합니다. 침묵은 하느님의 소리를 듣는 최고의 기도입니다.
세상은 시끄럽지만 우리는 조용합니다. 세상은 소비하지만 우리는 절제합니다. 세상은 싸우지만 우리는 화해합니다. 그것이 대림의 정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