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합동단속으로 희생된 이주노동자 뚜안 님을 위한 추모 미사 [강론] 
신명 24,17-22; 토빗 13,2.3 ㄷ-4.6 ㅁㅂㅅㅇ.6 ㅈㅊ.6 ㅋㅌㅍ(◎1 ㄴ); 마태 25,31-46
김진호 바오로 신부
 
오늘 우리는 한 젊은 여성의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지난 
10 월 28 일, 이름도 생소한 산업단지의 한 구석, 컴컴한 어둠 속에서 베트남 출신의 여성 
노동자 뚜안 씨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업주의 동의도 받지 않은 단속반이 공장에 
들이닥쳤고, 뚜안 씨는 좁은 천장 위에서 세 시간 동안 몸을 웅크린 채, 생의 마지막 순간 
친구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무서워.” “숨 쉬기 힘들어.” 좁은 공간에 끼어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던 뚜안 씨의 이 두 마디가 이 사회 안에서 숨 쉴 공간조차도 갖지 
못한 채 살아가는 모든 이의 절규를 드러냅니다. 이 절규가 우리 양심에 날아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를 향해 묻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법이 사람의 생명 
위에 서 있는 세상을 견뎌야 하는 것입니까? 
 
“법을 집행하다 보면 그런 일도 있을 수 있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어”라고 
말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분명히 짚고 넘어갑시다. 이 사건은 안타깝게 벌어진 
사고가 아니라, 국가 주도로 자행된 폭력(살인)사건입니다. 이번 단속은 경주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진행된 정부합동단속이었습니다.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국제회의에 참석하는 고위 인사들에게 도대체 어떤 해를 끼칩니까? 
그들이 거리를 걷는다고 해서, 그들이 일하는 공장이 존재한다고 해서, 어떤 위험이 
생긴다는 말입니까? 결국 이 단속은 치안을 위한 것도, 질서를 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 
단속은 인간 청소를 위한 일이었습니다. 사회의 가장 약한 자들을 보이지 않게 하여, ‘정상 
국가,’ ‘선진 국가’의 이미지를 연출하려는 잔혹한 연극이었습니다. 어쩌면 실적 
쌓기였을지도 모릅니다. 뭐가 됐든, 도대체 이러한 발상이 어떤 공직자의 생각에서 나온 
것인지 실로 놀랍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에서 예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이 말씀은 종교의 울타리를 넘어, 모든 사회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윤리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한 사회가 얼마나 정의로운가에 대한 답은 그 사회가 
강한 자를 어떻게 대하느냐가 아니라, 가장 약한 자를 어떻게 대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뚜안 씨의 죽음은 개인의 비극적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어 
왔는가를 드러내는 거울과도 같은 사건입니다. 
 
그리고 이 비극의 배경에는 한 가지 언어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바로 
‘불법체류자’라는 언어입니다. 아직도 많은 분들이 이 표현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계시지만, 법률적으로 이 표현은 이미 오래전부터 ‘미등록 이주민,’ 또는 ‘체류 자격이 없는 
외국인’으로 바뀌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원래 체류자격을 갖고 있다가 체류기간을 넘긴 
‘초과 체류자’이기 때문입니다. 불법체류자라는 표현은 실제 현실과 인간성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 부실하고 빈약하며 불성실하기 짝이 없는 언어입니다. 그럼에도 이 단어가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사람의 신분을 낙인 찍는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단어의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 ‘행위의 불법’과 ‘존재의 불법’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절도범’, ‘사기범’ 같은 표현은 특정한 불법 행위를 강조하지만, 
‘불법체류자’는 행위를 넘어 존재 자체를 불법화합니다. 즉 이 단어는 그 사람이 저지른 
행위가 아니라 그의 존재 자체를 범죄와 동일시하는 언어적 구조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불법을 저지른 사람’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불법인 사람’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언어로 
자행되는 명백한 폭력이며 현대 사회가 만들어 낸 사실상 새로운 형태의 신분제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신분에 따라 사람의 가치가 갈리던 과거의 신분제가 이제는 체류 
자격이라는 형태로 되살아난 것입니다. 
 
체류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불법체류자라 부른다면 출생신고 시기를 놓친 
아기도 불법체류자입니다. 그 아기가 존재할 서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아기를 불법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존재는 결코 불법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법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결코 존재를 부정하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법이 생명보다 앞설 수 없고, 인간의 존엄보다 우위에 설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언제까지 법이 사람의 생명 위에 서 있는 세상을 견뎌야 하는 
것입니까? 법과 정의를 향해 재차 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법은 인간의 존엄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법이 오히려 인간을 두렵게 만들고, 생명을 
빼앗는 도구로 쓰이는 현실을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법은 더 이상 정의로운 것이라 
부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난 겨울과 봄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가 점차 제자리를 찾아가고 
법치 국가의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다며 의기양양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마주한 뚜안 씨의 
비참한 죽음은 우리 사회가 윤리적으로 파산해 버렸음을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우리는 이제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우리는 이주노동자들을 ‘필요할 때만 쓰는 
사람들’로 여기고, 그들의 존재를 ‘보이면 안 되는 것’으로 취급하는가. 그들이 우리 곁에서 
일하고, 살아가고, 웃고, 숨 쉬는 것을 허락받아야 할 일로 만드는 사회가 과연 정상인가. 
 
오늘 이 추모의 자리는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늦게야 
뚜안 씨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친구, 형제인 뚜안 씨의 죽음을 애도하는 
우리의 슬픔이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연대를 향한 다짐으로 바뀔 것입니다. 우리 
친구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그리고 잊혀지지 않도록, 이 땅의 모든 이주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우리는 오늘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이제 더는 “불법”이라는 단어가 사람을 죽이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신분보다 먼저, 체류 자격보다 먼저, 그가 사람이라는 사실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국적이 아니라 얼굴을, 신분이 아니라 이름을, 체류증이 아니라 눈빛 속의 
두려움과 희망을 볼 줄 아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문명이고 그것이 
인간다움입니다. 
 
오늘 우리는 뚜안 씨를 하늘에 보내며 다짐합니다. 이 땅에서 다른 사람이 같은 
두려움 속에 죽어가지 않게 하겠습니다. 살아가는 것이 무서운 일이 되지 않게 하겠습니다. 
숨을 쉴 수 있게 하겠습니다. 인간의 존엄이 단속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겠습니다. 법이 
생명을 옹호하고 인간이 서로를 보호하는 사회를 만들겠습니다. 우리 사회가 다시 사람의 
얼굴을 회복하도록 헌신하겠습니다. 뚜안 씨의 절규가 우리 사회의 각성을 불러 일으키는 
목소리가 되도록, 잊혀지지 않도록 마지막까지 기도하겠습니다. 
 
뚜안 씨, 부디 편히 쉬십시오. 당신의 두려움은 이제 우리의 책임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이름은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의 손에서 빚어진 물건이 우리의 일상 속 
어딘가에 스며 있음을 기억합니다. 오늘 우리는 당신의 이름으로 이 땅의 모든 
이주노동자와 함께 인간의 존엄을 지켜내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 
 
주님, 이제 더 이상 누구도 ‘불법’이라는 이름으로 죽지 않게 하소서. 인간이 인간을 
숨게 만들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다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허락하소서. 
 
주님, 뚜안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세상을 떠난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아멘. 
 
2025. 11. 12. (수) 12:00 / 부산출입국 외국인청 앞 공터
11.15 추모미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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