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한국 순교자 대축일 강론)

 

순교자의 후예

 

그동안 우리는 많은 순교자 이야기를 들어 왔습니다. 순교 성인들의 전기나 한국 천주교 교회사 이야기는 오늘 하지 않겠습니다. 인터넷과 유튜브를 찾아보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 순교는 한순간의 사건이지만 그 순교는 한 번의 영웅적인 결단으로 이뤄진 것이 아닙니다. 순교자들의 평상시 삶의 모습이 순교라는 결실로 드러난 것입니다. 순교자들은 기본적으로 성가정 속에서 성장했으며 교우촌 안에서 신앙을 다져 나갔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순교자들은 박해로 인해 비록 가난했지만 결코 굶주리지 않았습니다. 서로 나누었기 때문입니다. 또 순교자들은 비록 숨어 지냈지만 결코 비겁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서로 위로하며 용기를 북돋웠기 때문입니다. 순교자들은 비록 출신 지역, 신분, 계급, 재력 등 사회적 배경이 다 달랐지만 어떤 누구도 차별받거나 배제당하지 않았습니다. 부자이든 빈자이든 식자이든 무식자이든 양반이든 천민이든 그들은 주님 안에서 한 식구였으며 같은 하느님 아버지를 모시는 형제자매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통치 이념이나 체제, 그리고 어떤 권력자도 이루지 못한 이상사회를 이미 한국 초대 교회는 240년 전에 이 땅에서 구현한 것입니다. 초대 교회 신자들은 서로를 내 몸 같이 사랑하고 존중하며 운명을 같이 나누었습니다.

 

누차 말씀드리지만 순교는 사랑 고백의 최고 형태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교우들을 사랑하지 않으면 절대 순교할 수 없습니다. 순교자들은 내세 천국이나 성인품의 명예를 얻기 위해 순교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순교의 영광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순교자들의 후예입니다. 목숨으로 증명하는 진리보다 더 확실한 게 무엇이겠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매년 순교 성월마다 순교자들의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고 외칩니다. 그러나 실제 우리 삶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진정 순교자들의 후예입니까? 아니면 배교자들의 후예입니까? 몸만 성당에 머문다고 신앙인인가요? 무늬만 신자면 뭐 합니까?

 

이제부터 배교자의 기준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럼 이 시대의 순교자 기준도 생기겠지요. 정반대로 실천하면 됩니다.

 

공동체의 일치와 화합을 깨고 분열을 조장하는 언행을 일삼는 자들

외인들보다 못한 인성과 성품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자들

성당 안과 성당 밖의 생활이 일치하지 않는 자들

개인주의와 세속주의에 빠져 기초적인 신앙생활조차 게을리하는 자들

타인의 슬픔과 아픔에 무관심하고 이기적으로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자들

 

바닷물의 염분은 3.5%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 염분이 바닷물을 짜게 만듭니다. 주님께서 일찍이 우리더러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일전에 말씀드렸지만 부산교구의 인구대비 신자 비율은 8.56%입니다. 그러나 실제 주일 미사 참례 비율은 대략 1%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1% 중에 소위 좀 열심히 한다는 신자들, 즉 사목위원들, 전례봉사자들, 레지오 단원들, 제 단체 회원들, 소공동체 반원들은 대략 3분의 1 정도 됩니다. 제발 이들만이라도 소금의 역할을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시대의 순교가 뭡니까?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들은 것을 가슴에 새기고, 가슴에 새긴 것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한다면 우리 공동체가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우리 천주교가 이 지역 사회에서 귀감이 되어야 하는데, 거꾸로 우리가 그들의 비난의 대상이 된다면 성당이 존재해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김대건 신부님의 11번째 편지>

 

거의 모든 백성이 그리스도의 종교를 찬양하고, 그 종교가 참된 종교임을 고백하며, 박해가 없었더라면 그들도 신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로지 박해가 무서워서 감히 귀의하지 못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포졸들도 서로 다음과 같이 수군거립니다.

 

만일 박해가 없다면 누구라도 송아지 새끼가 아닌 이상 천주교 신자가 되기를 마다할 사람은 없었을 거야.” “천주교는 참으로 훌륭한 종교이기는 한데, 우리가 만일 신자가 되면 아무것도 우리가 원하는 대로 마음대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군. 온갖 모욕을 인내로 참아내고 언제 어디서나 겸손해야 한다네. 자기 자신과 세상 사물을 경시하며 모욕을 받더라도 보복을 해서는 안 된다네.” “그러니 비참할 거야. 세속적인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산다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을 거야.”

 

일반적으로 외교인들은 천주교 신자들이 정직하다고 알고 있고 신자들의 비참을 동정합니다. 박해 때에는 신자들에게 여러 가지로 은혜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외교인들은 어떤 좋은 것이나 놀라운 것을 발견하면 천주교인 소행이라고 합니다. 외교인들끼리도 어떤 것을 올바로 행하면 자네도 천주교 신자인가. 그래서 바르게 행동하려는 건가?”라고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