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성 십자가 현양 축일

by 주임신부1004 posted Sep 15, 202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다해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참된 십자가 현양이란?

 

오늘은 연중 제24주일이면서 공교롭게도 성 십자가 현양 축일입니다. 현양이라는 말은 한자로 顯揚(나타날 현, 오를 양)이라고 하는데, 풀이하면 그 대상이 만천하에 드러나도록 들어 높이는 것을 말합니다.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의 기원을 간단히 말씀드리면, 헬레나(+330) 성녀의 십자가 발견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헬레나 성녀는 천주교를 공인한 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입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자신을 유일한 황제로 만들어준 밀비우스 다리 전투에서 자신이 본 환시에 따라 자신의 군사들에게 십자가 문양(키로)을 방패에 새기고 싸우라고 합니다. 결국 승리하게 되지요. 이후 천주교를 공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본인은 정치적인 이유로 죽기 전에 세례를 받았지만 어머니에게는 빨리 세례를 받기를 권합니다. 그렇게 헬레나 성녀는 60세가 넘은 고령에 아들의 권유로 세례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순례길을 떠나게 되는데, 거기서 골고타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내고 그 위에 성전을 세우는 과정에서 예수님의 죄명패를 발견하게 됩니다. “유다인의 왕 나자렛 예수그러나 골고타는 수많은 죄수들의 십자가 처형이 이뤄진 장소이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발견하기란 어려운 일이었지요.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수많은 십자가 중에 한 십자가만이 기적을 일으킨 것이지요. 십자가 위에 놓인 젊은이 시신이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이후 성녀는 십자가를 세 등분으로 나누어 각각 예루살렘, 로마, 콘스탄티노플에 두게 합니다. 로마로 보낸 예수님의 십자가는 지금 로마 바티칸 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상징은 단연 십자가입니다. 원래 사형 틀이었던 십자가는 이제 구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 민수기에서 모세의 구리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광야에서 하느님께 불평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불뱀이 공격합니다. 불뱀에게 물린 백성들은 곧 죽어갑니다. 이에 모세는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며 살려달라고 애원합니다. 이때 하느님께서 진노를 거두시고 모세에게 구리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으라고 명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를 쳐다본 사람들이 다 낫게 됩니다. 구리 뱀은 그리스도 십자가의 예형입니다. 이제 신약의 백성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십자가의 본질은 자신을 죽이고 모두를 살리는 거룩한 희생에 있습니다. 십자가 희생 제사는 하느님 사랑의 완성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그런데 좀 전에 설명했던 헬레나 성녀가 발견한 실제 예수님의 십자가가 발견 당시 죽은 젊은이를 살렸단들 그것이 우리의 구원과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의 기적이지요. 되살아난 그 청년도 시간이 흘러 어느 시점에 다시 죽었을 것입니다. 그 청년이 참으로 구원 받았는가는 알 수 없습니다. 또 실제 예수님께서 못 박히신 십자가라 할지라도 그것이 나를 통해 삶의 현장에서 구현되지 못한다면 성물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유물에 불과합니다. 십자가 현양은 금 장식된 십자가나 화려한 전례 예식 속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십자가 현양은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기리고, 내가 그것에 참여하는 것에 있습니다.

 

언젠가 평일 미사 강론 때 했던 이야기인데요, 성상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요즘 성상을 유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이름 모를 냉담자가 신앙과 함께 버린 것입니다. 물론 재활용(입양?)되고 있습니다만, 버려진 성상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세례받은 자가 영원한 생명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한편 성상이 집에 많다고 신심이 깊은 것이 아닙니다. 성상은 그 대상을 본받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 예수 성심상을 보면서 예수님을 닮으려고 하고, 성모상을 보면서 성모님을 닮으려고 해야 합니다. 성상 자체가 어떤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어 액운을 쫓는 부적처럼 여겨져서는 안 됩니다. 십자고상과 묵주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교의 상징인 십자가가 부적이나 악세사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작년 축일 때도 이야기했지만, 우리 성당 지붕 위에는 세 개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하나는 내 가정을 위해서 짊어져야 십자가이고, 다른 하나는 내 본당을 위해서 짊어져야 할 십자가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내가 몸담고 있는 일터와 지역사회를 위해서 짊어져야 할 십자가이다. 참된 십자가 현양은 내 삶을 통해서 이뤄집니다. 희생과 사랑 없는 십자가는 그저 장식에 불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