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연중 제22주일 강론)
높은 자리와 낮은 자리
(황주교님 아반테 일화)
우리 안의 서열문화는 주로 나이, 직책, 계급을 척도로 삼습니다. 그리고 어떤 행사가 있으면 그에 따라 이른바, 배석 의전이 달라집니다. 울산 대리구 설정 10주년 기념 음악회를 제가 총진행했는데, 그때 배석 의전 때문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교회 안팎의 인사들을 분류하고 지위의 높고 낮음에 따라 자리를 배정해야 하는데, 가장 까다로운 사람들은 국회의원, 시장을 비롯한 지방 자치 단체장들이었습니다. 자리 순서 바뀌면 바로 수행비서들에게 항의 들어옵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잔칫집에 초대받은 손님들은 높은 자리에 앉고 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집주인은 바리사이들의 지도자라고 했으니, 그는 기본적으로 율법교사 출신이면서도 꽤 재산이 많은 부자였을 겁니다. 그러면 자기 집에 아무나 초대하지 않았겠지요. 아마도 지위가 높고 명망 있는 유지들을 초대했을 겁니다. 예수님은 사실 시골 출신의 랍비여서 초대 명단에는 처음에 없었지만, 당시 최고 인기 스타였기 때문에 그 영향력을 생각해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힘을 보여주려는 속셈으로 별도로 초대했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집에서 기존의 관례를 뒤집는 말씀을 하십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 14,11)
7죄종 가운데 가장 죄질이 나쁜 것은 교만입니다. 오늘 집회서 말씀에도 교만을 경계하지요. “거만한 자의 재난에는 약이 없으니, 악의 잡초가 그 안에 뿌리내렸기 때문이다.”(집회 3,28) 교만은 악의 근원이니 결국 약도 없는 재난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교만은 천사도 타락시킵니다.
한편 교만은 권력을 지향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보다 낮은 이들을 배려하지 않습니다. 왜 오늘 복음에서 집주인은 예수님이 언급한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 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그들을 통해서 자신이 얻을 이익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바리사이의 지도자가 베푸는 잔치의 목적은 자기 자신의 명성뿐이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인가 보답을 바라는 신앙생활은 하느님과의 거래이지 순수한 의미에서의 믿음이 아닙니다. 오히려 보답을 바라지 않고 하느님 나라의 의를 추구하는 신앙생활이 더 값지고 빛나는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가련한 이웃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섬기고 살피는 사람이 됩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본래 내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으로부터 왔으니 모든 것을 다시 하느님께 돌려드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처사입니다. 이것을 깨닫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높여주시는 가장 높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