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중미사 강론
2025.08.17 19:46

연중 제20주일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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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0주일(다해, 2025년 8월 17일)강론

 
오늘의 복음 말씀은 얼핏 듣기에는 참 이해하기가 어려운 내용처럼 들립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은 세상에 평화와 일치를 위해 이 세상에 오신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성인도 예수님을 닮아 자신을 평화의 도구로 써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평화보다는 분열을, 그리고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왜 예수님께서 이처럼 역설적인 표현을 하셨을까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평화는 ‘불’을 통하여 실현됩니다. ‘불’은 『성경』에서 심판을 뜻합니다. 그러니 세상에 불이 훨훨 타오르기를 바라시는 것은 세상 안에 있는 온갖 악의 세력을 태우고자 하시는 마음인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진정한 평화가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루카 복음 사가의 경우에는 불이 성령을 상징하기도 합니다(루카 3,16; 사도 2,3.19 참조). 결국 세상에 불이 타오른다는 것은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세상의 온갖 불의와 부패를 없애 버리는 것을 상징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평화는 ‘예수님의 세례’를 통하여 실현됩니다. 세례란 옛 삶이 죽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세례란 십자가상의 죽음에서 부활로 이어지는 구원을 가리킵니다. 곧 그분의 죽음과 부활의 구원 사업이 이 세상에 참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셋째로, 평화는 갈등과 분열이라는 역경을 극복해야 얻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은 본디 혈연과 학연, 지연 등 수많은 관계의 사슬에 얽매여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다양한 관계 중에서 가장 근본적이며 중요한 관계는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하느님과 이루는 관계입니다. 이 관계는 마치 태아가 탯줄 없이는 생명이 끝나는 것처럼 인간에게 필수적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분열을 일으키시겠다는 것은 우리를 둘러싼 모든 세속적 관계를 넘어서 하느님과 맺는 관계를 최우선으로 삼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질서가 잡혀야 인간 본연의 평화가 오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세상이 주는 세속적인 평화에 익숙하면 익숙한 만큼 그리스도의 참 평화를 얻는 데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입니다.
 
로마 제국시대에 소위 팍스 로마나로 불리던 ‘로마의 평화’ 시기가 있었습니다. 강력한 다섯 황제(a.d 1-2세기 아우구스투스부터 180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까지)가 통치하던 시기를 말하지요. 그러나 이 시기도 강력한 로마제국 독재자의 치하에서 얻는 평화를 의미하지 참된 평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또한 오늘날도 미국은 전 세계를 미국의 통제 아래에 두려는 의도를 지니고 ‘팍스 아메리카나’를 부르짖고 있습니다. 즉 세계의 골목대장 노릇을 하겠다는 뜻이지요. 이것도 참된 평화를 의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평화는 예수님으로 인해 주어집니다. 그분이 탄생했을 때, 하늘의 군대는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라고 노래를 하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분으로 오신 그분께 고개를 숙일 수 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평화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부활과 참된 평화의 세상인 하느님 나라로 승천하시기 전에 이미 불과 같고 분열의 상징인 처절한 수난과 십자가 상 고통을 겪으셔야 했습니다. 이처럼 참된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불과 분열이라는 나름대로의 혼란과 고통의 과정을 겪어야만 한다는 것을 오늘 복음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점과 관련된 한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은 하얼빈에서 조선침탈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는 체포될 때, 이토 히로부미가 절명했다는 소식을 듣자, 드디어 폭군이 죽은 것을 하느님께 감사한다며 가슴에 크게 성호를 그은 다음 '대한 만세'를 외쳤습니다.
그의 신앙은 겨레에 대한 사랑과 따로 있지 않았습니다. 안중근은 아시아 선교를 하였다는 이유로 ‘토마스’(多默)를 세례명으로 정했으며, 자신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을 천주교 교리에서 금지한 죄라 여기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성서에도 사람을 죽임을 죄악이라고 한다. 그러나 남의 나라를 탈취하고 사람의 생명을 빼앗고자 하는 자가 있는데도 수수방관하는 것은 죄악이므로 나는 그 죄악을 제거한 것뿐”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열심한 신앙인이었으며 교리에도 밝았습니다.
 
이처럼 그는 신앙적 확신과 ‘만국 공법’ 사상 안에서 이등박문을 살해하였던 것입니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라는 유언을 빌렘 신부님에게 남겼다는 안중근은 3분간 기도를 하고 사형대에 올라 동양 평화 만세를 외치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호주머니에 예수님의 성화를 지닌 채 말입니다.
안중근 토마스는 여순 감옥에서 사형당하고 교회에서 단죄받았으나 1993년 8월 21일에 거행된 ‘안중근 의사 추모 미사’에서 김수환 추기경의 강론을 통해 83년 만에 그의 명예가 회복되었습니다. 아무튼 일제 통치 암흑기에서 민중의 예언자였던 안중근 토마스는 자신의 한 몸을 던져 예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갔던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결코 우리의 아픔과 고통을 즐기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영원히 타오를 지옥의 불길 속에 우리를 내버려두실 분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제 이 시간 우리 한마음으로 기도합시다. 
“사랑의 불이신 예수님, 성령의 거센 불길로 저희를 휘감아 주십시오. 그렇게 저희의 모든 추악함과 사악함을 말끔히 정화하시고 평화의 세상인 새 하늘, 새 땅을 차지할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게 이끌어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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