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중미사 강론
2025.07.27 09:14

연중 제17주일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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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7주일(다해, 2025년 7월 27일) 강론
 
본격적인 여름인 것 같습니다. 요즈음은 밤이 되어도 기온이 내려가지 않는 열대야로 인해 밤잠을 설치거나 아예 바닷가나 강가로 이부자리를 옮기는 가정도 있다고 합니다. 모두들 이 더운 시기를 슬기롭게 잘 대처해 가도록 합시다.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 어떤 스승님이 계셨습니다. 이 스승님께서는 늘 입버릇처럼 하루빨리 하늘나라에 가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고, 또 그렇게 기도를 많이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정말로 스승님이 죽기를 바라는 것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스승님이 술에 취해 침대에 누운 날 침대에 밧줄을 달아 조금씩 위로 올리면서 “너가 그토록 가고 싶어 하는 하늘나라에 이제 데리고 가마.”라는 소리가 나게 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스승님은 곧바로 무릎을 꿇고는 이렇게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아직은 말고요. 아직은 말고요....”
세상의 어떤 사람도 죽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의 사명이 미완성인 채로 죽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지요.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껏 어느 누구도 예수님께서 너무 젊어서 돌아가셨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육십 대에 돌아가셔도 “아이고, 너무 젊어서 돌아가셨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예수님의 나이 서른셋은 새파랗게 젊은 나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도 “너무 젊어서 돌아가셨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구원 사업을 완수하셨기 때문입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자신이 마쳐야 할 사명을 완성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완수하기 보다는 다른 것에 더 많은 신경을 씁니다.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집착 때문에 주어진 사명을 이행하지 못하고 후회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들은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은 연중 17주일로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가장 아름다운 기도라고 불리는 주님의 기도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모두 7가지의 희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앞의 세 가지는 하느님의 영광에 대한 것이고 나머지 네 가지는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히 하느님의 영광에 대한 내용은 먼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시며’ 그리고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고 성부께 대한 신뢰와 찬미를 먼저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기도하면 늘 “-무엇 무엇을 해주소서”, 라는 청원적이고 기복적인 기도만을 바치는 것과는 대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그리스도교 역사의 초 세기부터 하루에 세 번씩 바치도록 권고되었는데, 오늘날 성직자 수도자들은 성무일도의 아침기도와 저녁기도 그리고 미사 때 바침으로서 세 번을 바치고 있는 셈입니다. 
 
기도를 바친다고 함에는 염경기도, 화살기도, 묵상기도, 관상기도 등 다양한 방법들이 있습니다. 특히 신학생들이나 수도자들에게는 어떻게 하면 기도를 잘 바칠 수 있을까 항상 관심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광주신학교 시절의 일화가 생각납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강연 후 질문, 1학년의 질의-> 응답 ‘기도해라!’).
이처럼 항구하고 꾸준한 기도는 오늘 복음의 후반에서 예수님께서도 강조하고 계십니다. “청하여라 주실 것이다. 찾아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기도가 이루어지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꾸준히 기도할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도 열심한 신앙인들은 몇십 년씩을 자녀들이 깨어나기도 전인 새벽마다 촛불을 켜놓고 기도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다 가끔 잠결에 자식이 깨어보면 기도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는 부모님께서 나를 위해 이렇게 정성드려 기도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훗날 어떤 유혹이나 나쁜 일을 해야 할 경우에도 기도하시는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라 나쁜 길을 피하게 되는 사례들도 종종 보게 됩니다. 
 
그리고 기도란 하느님과의 대화라고 정의하는데 우리 현실을 보면 대화라기보다는 우리 자신의 독백으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우리의 일방적인 찬미와 요청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하느님 말씀이 담겨있는 성경를 읽거나 자주 침묵 속에서 떠오르는 주님의 말씀을 묵상한다면, 그것이 응답 말씀으로 대치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인류문명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로 발전했다가 이제는 첨단 미래기술이라는 ‘인공지능’시대가 도래함으로써 세상은 더 편리해지고 점점 더 세속화의 길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신앙인들조차도 하느님에 대한 생각이나 기도할 시간들이 줄어드는 현실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직자 수도자 성소가 점점 줄어들고 우리 교회의 가르침이나 지켜야 할 도리도 대충주의, 혹은 이완주의의 모습이 만연해가는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개신교 같은 근본주의적인 모습이나 배타적인 신앙관은 더 문제이겠지만 가톨릭 신앙인으로서 좀 더 기도시간을 할애하고 성경 가까이하는 시간도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아무리 선하시고 용서하시는 하느님이라도 청하지 않고, 찾지 않으며, 두드리지 않는 자녀들에게는 아무것도 주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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