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중미사 강론
2025.07.13 09:28

연중 제15주일 강론

조회 수 10 추천 수 0 댓글 0
연중 제15주일(다해, 2025년 7월 13일)강론
 
오늘 복음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방법을 묻던 율법학자가 이웃사랑에 대한 문제에서 누가 제 이웃입니까 하고 묻습니다. 이에 대한 예수의 대답으로 우리에게는 친숙하게 알려져 있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강도를 만나 불행에 처해있는 사람을 보고도 피해서 지나 가버린 사제, 그리고 가장 경건한 인물로 통칭되던 레위인, 이들의 태도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프랑스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속담의 의미는 자신의 높은 지위에 맞게 그에 따른 사회적 의무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나라 정치계, 경제계 심지어는 교육계와 종교계에서까지 일부 지도자들이 보여주는 파렴치하고 부도덕한 모습을 보면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반면 하느님을 잘 알지도 못하고 그래서 구원의 대상에도 제외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이방인 사마리아 사람이 보여준 태도는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가 우리의 이웃임을 알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작건 크건 누구나 ‘강도’를 만나는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입은 상처, 또 우리 기억 속에 끈덕지게 살아남아 지금도 우리를 괴롭히는 깊은 상처가 된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 자신이 강도가 되어 가족이나 이웃에게 큰 상처를 안겨주기도 합니다. 남을 괴롭힌 그 죄가 상처가 되어 남으로부터 받은 상처 못지않게 깊은 앙금으로 남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었던 아름다운 경험을 간직한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로는 강도가 될 수도 있고, 약자가 되기도 하며, 착한 사마리아 사람도 될 수 있습니다. 
즉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는 하느님으로부터 무상으로 받은 자유를 어떻게 행사하느냐에 따라서 모두에게 열려 있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되어 신앙을 선택했고 또 저 같은 이들은 그중에서도 사제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오늘의 복음을 조금만 묵상해보면 구원을 얻기 위해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데는 자신의 종교나 어떤 신분에 좌우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신자 아닌 다른 사람들이 우리보다 훨씬 훌륭하고 착하게 살 수도 있으며, 또한 불의를 거슬러 투신하는 모습은 우리 신앙인들을 부끄럽게 만듭니다. 따라서 하느님 앞에 모두가 평등한 우리 인간들은 누가 더 겸손과 비움을 통해서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깊은 사랑의 실천으로 나아가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입니다.
한편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라는 율법 교사의 질문에서 우리는 인간의 나약함과 두려움을 봅니다. 자신의 삶 안에서 늘 마주치는 불확실성과, 결국은 죽음을 맞이하게 될 인간의 한계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인간은 이 두려움을 이겨 내려고 하느님을 만나고 싶어 하고, 하느님 안에서 영원한 안식처를 얻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오며서 이스라엘 백성이 찾던 하느님의 모습은 큰 변화를 겪게 됩니다. 하느님을 “절대적 타자”, 곧 저 먼 나라 별에서 온 존재로서 우리와 완전히 다른 분으로 인식했던 구약의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만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그분과의 계약, 곧 율법에 충실함으로써 구원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절대자이신 하느님께 대한 신뢰 행위로서 율법에 대한 절대적 충실함은 오히려 인간에게 멍에가 되고 더 큰 짐을 지워 줍니다. 
반면, 우리에게 새롭게 다가오신 메시아, 즉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에서 이해했던 하느님 상과는 달리,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시면서 동시에 완벽하게 우리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이제 하느님께 드려야 할 봉헌도 율법의 전통을 따름이 아니라, 우리 일상에서 만나는 이웃을 사랑하면서 나눔과 일치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묵상하면서 지난 2014년 8월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방한을 마치며 하신 인터뷰 내용이 떠오릅니다. “저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슬픔에 동참한다는 뜻으로 이 리본을 달았는데 반나절쯤 지나자 어떤 사람이 내게 와서 ‘교황은 중립을 지켜야 하니 그것을 떼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슬픔에 속이 쓰리고 마음이 찢어져 이미 함께 머물고 계셨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착한 사마리아인은 유대인들에게는 비록 무시와 경멸을 당하는 사람이었지만, 당시 종교적으로 거룩한 직분을 가진 이들과는 달리 그 가엾은 사람에게 다가가 치료해 주고,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어 쉴 곳을 마련해 줍니다. 모든 것에 앞서 그의 근본적인 선택은 내 이웃 즉, 사람이 더 소중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 주위에도 많은 이웃들이 있습니다. 내가 어떤 이의 이웃이 되어주는 가도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우리 주위에는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정말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들에게 참된 이웃이 되어줄 때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합시다.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연중 제15주일 강론 토현홍보분과장 2025.07.13 10
82 연중 제14주일 강론 토현홍보분과장 2025.07.06 23
81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강론 토현홍보분과장 2025.06.29 26
80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강론 토현홍보분과장 2025.06.22 23
79 삼위일체 대축일 강론 토현홍보분과장 2025.06.15 26
78 성령 강림 대축일 강론 토현홍보분과장 2025.06.08 13
77 주님 승천 대축일 강론 토현홍보분과장 2025.06.01 31
76 부활 제6주일 강론 토현홍보분과장 2025.05.25 27
75 부활 제4주일 강론 토현홍보분과장 2025.05.11 25
74 부활 제3주일 강론 토현홍보분과장 2025.05.04 21
73 프란치스코 교황 추모미사 강론 토현홍보분과장 2025.04.27 18
72 주님 부활 대축일 낮미사 강론 토현홍보분과장 2025.04.20 31
71 예수 부활 성야미사 강론 토현홍보분과장 2025.04.20 12
70 주님 수난 성지주일 강론 토현홍보분과장 2025.04.13 33
69 사순 제5주일 강론 토현홍보분과장 2025.04.06 25
68 사순 제4주일 강론 토현홍보분과장 2025.03.30 26
67 사순 제3주일 강론 토현홍보분과장 2025.03.23 40
66 사순 제2주일 강론 토현홍보분과장 2025.03.16 22
65 사순 제1주일 강론 토현홍보분과장 2025.03.09 27
64 연중 제8주일 강론 토현홍보분과장 2025.03.02 39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Next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