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연중 제14주일 강론)
평화를 빕니다!
(남녀의 여행 짐 싸는 스타일)
주님께서는 사도들에게 복음을 전하라 하시면서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라 하십니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일주일이 더 걸릴 수도 있는 긴 전도 여행인데 최소한의 의식주는 해결해야 할 것이 아닙니까?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신뢰 때문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하면서 오로지 하느님께 의지해야지 인간적인 방식에 기대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에 이를 뒷받침해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 6,31-34)
사도들은 예수님의 명에 따라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도들이 활동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도록 다 예비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은 가는 곳마다 지지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의 도움을 받아 모든 의식주를 해결했습니다. 사도들이 품에 안고 간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과 평화였습니다. 그 외에 다른 것들은 하느님께서 다 마련해주셨습니다.
오늘은 주님의 평화에 대하여 묵상해 보면 좋겠습니다. 히브리 말로 평화는 잘 알다시피 ‘샬롬’입니다. 일종의 평화를 기원하는 인사말이지요. 그런데 이 인사말은 우리나라의 인사말인 ‘안녕하십니까?’와 비슷합니다. 한자로는 安(편할 안)에 寧(편안할 녕). 즉 탈 없이 무사하냐는 뜻이며 "오랜만에 봤는데 건강은 괜찮으시오?" "아무일 없으시죠?" 등 상대방의 건강을 챙기고 걱정해주는 인사말입니다. 또한 ‘안녕하십니까?’는 보릿고개, 외적의 침입 등 살기 각박한 조상들의 삶의 모습이 비춰진 인사말이라고 합니다. 아무튼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외침이 잦았던 유대인들은 상호 인사말이 평화를 비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말씀하신 평화는 단지 전쟁이 없는 태평성대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 평화는 외적 환경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내적인 평화입니다. 이 평화는 전쟁 중에도 가질 수 있고, 가난 속에서도 가질 수 있으며, 슬픔 속에서도 가질 수 있는 평화입니다. 또한 이 평화는 복음의 핵심인 용서와 화해가 가져다주는 평화이고,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주님을 신뢰하여 온갖 두려움과 불안을 극복하는 평화를 말합니다.
부디 여러분 각자와 가정, 그리고 우리 전포성당 공동체에도 그 평화가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미사 중에 ‘평화를 빕니다.’하고 서로 인사합니다. 전례 안에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대화 안에도 그 평화가 머물기를 바랍니다. 혹시 상대가 받아들이지 않더라고 미워하거나 저주하지 말고 주님께 맡기도록 합시다. 내가 감정 소모한다고 상대가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주님의 일을 하면 되는 것이고, 그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심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거부하는 이들에게 ‘발에 묻은 먼지까지 여러분에게 털어버리고 갑니다.’라고 선언하라고 사도들에게 이르셨습니다. 이는 ‘이제 나는 파견받은 자로서 할 도리를 다했으니 더는 지지하지 않는 자에게 실망하거나 원망하지 않겠다’는 뜻이지요. 이제 우리 모두가 각자의 삶 안에서 그리스도의 평화를 전하는 평화의 사도가 될 수 있도록 오늘 주님의 평화를 청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