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4주일(다해, 2025년 7월 6일) 강론
오늘의 루카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가 아니라 다른 일흔두 제자를 지명하시어 파견하시는 내용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봉헌하는 이 미사는 초대교회 때부터 빵 나눔, 감사의 제사, 봉헌, 성무, 거룩한 집회 등으로 불려왔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미사(Missa)는 라틴어 동사인 보내다, 파견하다 뜻을 지닌 ‘Mittere’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영어의 ‘미션’이란 용어도 같은 어원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러므로 미사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선포하고 증언하는 제사와 잔치의 성격을 지녔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파견되는 예식인 것입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인류를 죄와 죽음에서 해방하시고자, 눈에 보이는 형태로 예수 그리스도를 파견하셨고,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부로부터 파견되신 아드님의 권위로 제자들을 파견하셨고,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인 교황을 정점으로 성직자들도, 온 인류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파견되었으며, 또한 신자들은 하느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미사를 통해 파견됩니다.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라는 선언으로 모든 신자는 세상 속으로 파견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으로부터 파견된 성직자, 수도자 그리고 평신도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정의와 평화를 선포하게 됩니다. 이처럼 파견된 우리는 생각과 말과 행위로 기쁜 소식을 세상 끝까지 나아가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몇 가지 수칙을 정해주고 계십니다. 돈 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라고 무소유를 강조하시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말라고 하심으로서 무인연에 대한 수칙도 주십니다.
이러한 수칙을 주시는 이유는 “어떤 소유물이나 인간적인 인연으로 인해 속박되지 말고 자유로운 복음 선포가가 되라”는 의미로 들립니다. 그리고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그 집에 평화를 빌어주도록 당부하십니다. 아울러 오늘의 제1독서에서도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보라, 내가 예루살렘에 평화를 강물처럼 끌어들이리라.”고 평화를 통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있으며 제2독서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따르는 이들에게 평화를 빌어줌으로써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왜 예수께서 세례자 예언자가 강조한 회개도 아니오, 예수님 당신 자신이 가장 강조하셨던 사랑도 아닌, 무엇보다 먼저 평화를 강조하셨을까 하고 생각해보았습니다. 이는 일상을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제자들이 무엇보다도 우선시해야 할 일이 믿음과 희망 그리고 사랑도 중요하지만, 먼저 세상에 주님의 평화를 실현하라는 뜻으로 알아들었습니다.
평화는 사전적 의미로 전쟁이 없는 상태, 혹은 평안하고 화목함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나 평화라는 한자를 풀어보면 공평할 평(平)자에 화(和)자는 입‘구’와 쌀‘미’자가 결합되어 있습니다. 즉 밥이 공평하게 입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평화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다운 평화는 악이 없는 곳에, 죄의 용서를 받은 곳에 깃드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인류가 화해하여 가까워지고 친밀할 때에 진실한 평화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또한 부부가 서로 화목하며 원만한 가정생활을 할 때, 평화의 천사는 찾아오는 것이고 기도하는 가정, 이웃을 도울 줄 아는 가정, 양심을 따라 사는 가정에 진정한 평화는 머물게 될 것입니다.
어떤 형제가 도박 때문에 문제가 많았습니다. 그는 신자였지만 일종의 도박중독자였습니다. 화투짝을 손에서 놓으면 늘 불안했고 곧 돈을 딸 것 같은 착각 때문에 아무것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늘 딸 것 같은 것은 어디까지나 착각이었습니다. 이제는 건강도, 가정도, 그리고 사업마저도 병들게 되었습니다. 화투를 끊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뜻대로 안되었습니다.
부인은 돈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눈물로 호소를 해 보기도 했고 이혼을 하자고 협박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도박 자체가 병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구제불능의 인간이 어느 날 한 친구의 권유로 ‘성령 세미나’에 참석해서는 그 몹쓸 병을 고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믿지도 않는 그 사람이 성령의 은혜를 받은 것이었습니다. 묘한 일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손에서 화투짝을 떼면 생 자체가 아무 의미가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손에 화투가 있어야 살맛을 느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헛된 평화에서 벗어나 참된 평화를 찾았던 것입니다. 건강도 찾았고 일할 의욕도 찾았으며 또 가정이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냉담도 풀어 가정에 평화를 가져왔고 평화는 어둠을 몰아냈습니다. 예수님께서 평화를 주셨던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평화의 사도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참된 평화란 세속적 권력과 재력 그리고 학력이나 정력으로 안락한 삶을 통해 오는 그런 평화가 아니라 예수께서 보여주신 자기비움과 용서 그리고 회개와 사랑의 실천으로 이루어지는 평화를 말합니다.
아울러 예수님으로부터 평화와 은총의 선물을 받은 이는 모름지기 이것을 또한 이웃 사람에게 전하는 평화의 사도가 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