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대축일(나해, 2025년 6월 15일)강론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가톨릭 신자가 믿어야 할 교리를 4가지로 줄여서 외우곤 했는데 그것인즉 천주존재, 삼위일체, 강생구속, 상선벌악 이었습니다. 특히 죽기 직전에 대세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 네 가지 교리는 반드시 설명해서 믿는다는 동의를 구해야 대세를 주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삼위일체 교리를 기념하기 위해서 교회는 오늘을 대축일로 정해두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본체로서는 한 분이시지만 그 역할에 따라서 세상을 창조하신 성부와 인류구원을 위해 인간이 되어 오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오늘날까지 인간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협조자 성령으로 세 위가 존재하신다는 이 삼위일체 교리는 우리 인간의 이성으로서는 참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세 분이면 세분이지 세 가지 위격으로 된 분들이 또 본체로는 하나라니. 그래서 우리 교회의 가장 위대한 학자였던 성 아우구스티누스 성인도 이 고민을 풀기 위해 어느 날 바닷가를 산책하다가 생긴 일화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아이가 모래성을 쌓아놓고 바닷물을 퍼서 담는 모습을 보고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자, 미약한 인간이 하느님을 알려 하는 어리석음을 깨달음). 이처럼 초월적 신에 대한 문제를 우리 인간이 풀려고 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그는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도 만일 비신자들이 삼위일체 교리에 대해서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해 줄까 걱정하게 됩니다. 어떤 이들은 삼위일체 교리를 사과에 비유해서 설명하기도 합니다. 즉 하나의 사과는 그 속성이 종족을 보존하는 씨와 인간과 동물들에게 먹히는 속, 그리고 보호하는 껍질로 되어 있습니다. 비록 3개의 속성으로 나뉘지만 하나의 사과라고 부르기에 삼위일체 교리도 그렇게 설명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설명도 삼위일체에 대한 심오한 뜻을 완전히 설명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늘 강론을 통해서 삼위일체의 신비를 사랑이라는 명제로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셋이 모여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하나가 되고 완전한 일치를 이루십니다.”
창세기 1장 26, 27절에는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인간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항상 자신 안에 삼위일체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동물과는 달리 서로 사랑할 줄 알고, 아름다운 자연을 볼 때 혹은 참되고 선한 사람의 모습을 볼 때 감동할 줄 아는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속성이 이미 우리에게 내재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내용을 여러 곳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의 모습을 우리 안에 지니고 있다는 것은, 또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동행하신다는 사실은 우리 역시 사랑하며 살아감을 의미합니다. 때문에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사랑으로 가득 찬 이는 하느님으로 가득 찬 것이다”라고 말합니다(시편 상해 98,4). 이러한 의미에서 사랑으로 하나가 되신 삼위일체의 신비를 통해 같은 사랑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도 ‘사랑으로 하나 됨’을 이해할 수 있으며, 이는 신앙인의 믿음과 삶의 핵심적인 신비입니다.
이러한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우리 신앙인들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이라는 성호경을 통해 하루에도 몇 번씩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그네 인생길을 가고 있는 이 세상의 여정에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고백은 진정 우리의 삶을 그분께로 이끌어 줍니다. 말이든 행동이든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그분께 찬미와 영광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역경 앞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용기와 힘을 갖고 계속해서 하느님을 생각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김연아(스텔라)선수가 스케이팅을 시작할 때, 방수현(수산나) 선수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배드민턴 단식 금매달을 따고 보여준 성호긋는 모습은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던 것입니다.
그가 운동선수이든, 이제 막 시험을 치러 들어가는 수험생이든 매일 식사 전에 행하는 성호를 긋는 모습이든, 성호를 긋는 행위의 참의미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믿는 사람임을 겉으로 표현하면서 살아가겠다는 다짐입니다. 이는 나도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처럼 사랑하며 살겠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삼위일체 대축일을 맞이하여 이 신비를 믿고 고백한다는 참의미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삶이 받으려고만 하는 이기적인 사랑이 아니라, 내어주는 참사랑의 삶을 통해 가족과 이웃과 하나가 되어 살겠다는 다짐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사랑 그 자체이신 성삼위의 모범을 따라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