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성령 강림 대축일 강론)

 

서로 다른 언어, 그러나 하나의 신앙 고백

 

오늘은 성령 강림 대축일입니다. 또한 교회 창립일이기도 합니다. 성령께서 오시기 전에는 교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예루살렘에 제자들과 성모님이 한 자리에 모여 기도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 내려오시고 이른바 교회는 탄생합니다. 교회는 성령께서 이끄시는 신앙 공동체를 말합니다. 성령이 아니 계시면 우리의 전례도, 성사도, 신학도, 선교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저 인간의 일이 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함께 계시면 모든 것은 하느님의 일이 됩니다.

 

그렇다면 성령은 무엇입니까? 아니 성령님은 누구십니까? 교리적으로는 성령은 삼위 중에 한 분으로서 성부의 영이시자 성자의 영이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부와 성자와 독립적으로 존재하시는 성령 하느님이십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성령을 그 활동을 통해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마치 바람을 눈으로 볼 수 없지만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말입니다. 첫째, 성령의 가장 큰 활동은 일치입니다. 오늘 제1독서 사도행전에서 초대교회 신자들의 언어 이야기 나옵니다. 예루살렘 모교회에 많은 유다인들이 몰려듭니다. 그들은 해외 여기저기에 흩어져 살았기 때문에 모국어를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그들은 서로 다른 외국어로 말하면서도 각기 자기네 언어로 알아들었다고 합니다. 성령의 형상은 불혀라고 했습니다. 성령은 주님께 대한 불처럼 뜨거운 마음을 갖게 하고, 그것이 같은 신앙을 고백함으로써 서로를 하나로 묶어버립니다.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른바 지체론을 설파합니다. 몸의 지체는 각기 달라도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세례를 통해서 우리는 한 성령을 받았고, 이는 서로 다른 우리를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몸으로 만듭니다.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인들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에서 일치를 강조하는 이유는 당시 코린토 교회가 분열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바오로 편이다. 나는 아폴로 편이다. 나는 케파 편이다. 나는 그리스도 편이다.”하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갈라지셨다는 말입니까?(1코린 1,12-13) 분열은 파벌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파벌을 경쟁, 시기, 질투, 분노, 증오를 만들어 냅니다. 이러한 일들이 비단 초대교회에서만 일어났을까요? 우리 안에도 여전히 존재할지도 모릅니다.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일치하지 못하는 교회는 성령께서 계시지 않는 사교 모임이나 이해 집단에 불과합니다.

 

둘째, 성령의 가장 큰 특징은 용서입니다. 이 용서는 나의 용서가 아니라 주님의 용서입니다. 나는 감정적으로 도저히 상대를 용서하지 못하지만 주님께서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내가 용서하지 못하는 그 원수를 위해서도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다만 나에게는 그 주님의 용서에 협조하느냐 거부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부활하시는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평화의 인사를 하시면서 성령을 통한 용서를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2-23) 우리가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성령 안에 머물지 않으며, 성령께 협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대를 용서 못하는 나는 여전히 죄 속에 있습니다.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수 없습니다.

 

셋째, 성령의 가장 큰 특징은 은사입니다. 은사는 봉사하고 다릅니다. 봉사는 내가 선택하는 것이지만 은사는 성령께서 공동체의 선익을 위해서 나에게 무상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성가대가 있습니다. 타고난 목소리는 내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시는 천부적인 은사입니다. 그러나 성가대에서 봉사하는 것은 나의 선택입니다. 이에 반해 은사는 내가 선택한 봉사가 교회의 공동선을 위해서 사용될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봉사는 때때로 자기만족이나 자기과시를 위해서 이용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은사는 오로지 하느님의 영광과 교회의 선익을 위해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만일 자칫 은사를 활용하면서도 그 목적이 성령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익을 위한 것이라면, 나는 봉사를 하면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화를 내고, 불만을 품으며, 일치를 깨기도 할 것입니다. 나름 봉사를 열심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공동체에 불화가 있거나 분쟁이 있다면 그것은 성령의 은사가 아니라 인간의 일일 것입니다.

 

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하여 한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은 일치의 영, 용서의 영, 은사의 영입니다. 오늘 특별히 성령 칠은을 입고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도록 성령 하느님께 청원합시다. 성령은 교회의 본질입니다. 다시 한번 더 성령 강림 대축일을 축하하며 저마다 성령께서 충만하실 수 있도록 나를 내어드리도록 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