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강림 대축일(다해, 2026년 6월 8일)강론
계절의 변화는 참으로 신비스럽습니다. 계절에 따라 변하는 대자연은 더욱 신비스럽습니다. 봄이 되면 겨우내 죽었던 것처럼 보이던 나무 끝에 새잎과 꽃봉오리가 싹터 나오지만, 죽은 가지에는 새로운 생명이 싹틀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모든 생물에는 생명의 원동력이되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도 하나의 생명체이기 때문에 우리 생명의 원동력이 되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영혼’입니다. 교회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회의 생명력이 되고 영혼의 역할을 하시는 분이 계셔야 하는데 바로 천주 성령께서 이 역할을 수행하십니다. 이천여 년 전 오늘 성령께서 사도들 위에 강림하셨습니다!
성령께서 내려오시던 날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무서워 문을 잠가 놓고 숨어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여러 번 기적을 체험했고 기적의 음식을 먹었던 그들임에도 숨어 있었습니다. 초대 교회 순교자들을 비롯한 우리 한국의 순교선열들도 주님에 대한 믿음 때문에 당당하게 죽음의 길을 갔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은 어찌하여 당당할 수 없었는지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제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지만 순교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순교자들에게는 주님의 이끄심이 있었습니다. 내면에서 솟는 힘과 용기였습니다. 하느님의 이러한 개입을 성령의 활동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제자들에게는 없었습니다. 성령께서 아직 공적으로 활동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두려움에 떨거나 의심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랬던 제자들이 성령의 은사를 받은 후부터 완전히 태도를 바꿉니다. 죽음을 초월한 모습으로 군중 앞에 나타납니다. 그리고 기쁜 소식 즉,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고 우리를 구원하실 분임을 당당하게 밝힙니다. 며칠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넋을 뺏기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도대체 성령은 어떤 분이시기에 제자들의 태도를 이렇게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었을까요? 우리 그리스도교 교리에서는 성령을 받으면 7가지의 은혜를 받는다고 합니다. 먼저 구원을 얻기 위해 지적인 도움이 되는 슬기와, 어려운 것을 잘 알아들을 수 있는 통달, 선악을 잘 분별할 수 있는 의견, 악을 대적하고 순교까지도 이르게 하는 굳셈, 교리와 성서의 뜻을 잘 알아듣게 하는 지식, 하느님을 참으로 알아보게 하는 효경, 자신이 죄에 빠지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함이 그것입니다.
실제로 그들은 정신을 잃을 만큼의 강렬한 성령 체험을 했습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느끼고 만났던 것입니다. 성령 체험은 이렇듯 자신의 존재를 뛰어넘는 행위입니다. 인간의 연약함을 잊어버리고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깨닫는 체험입니다.
제자들은 이 체험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용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은 우리에게도 그런 ‘성령 체험의 은총’이 내려오는 날입니다. 우리 마음을 활짝 열면 ‘성령의 모습’은 깨달음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성령강림 대축일에는 수도원을 비롯한 교회의 많은 곳에서 성령의 일곱 가지 은사와 아홉 가지 열매 뽑기를 합니다. 오늘 예물봉헌시간을 통해 우리 공동체도 은사 뽑기를 할 것입니다. 오늘 내가 뽑게 되는 성령칠은 중 한 가지 은사와 성령의 9가지 열매 중 하나를 묵상하며 가슴에 새겨봅시다. 실제로 일상 속에서 성령의 은사와 열매가 실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오늘 독서와 복음을 묵상하면서 성령께서는 서로 다른 모습들을 하나로 모아주시는 일치의 원천이 되심을 깨닫게 됩니다. 사도들은 서로 다른 언어들을 말했지만, 그 말을 듣는 다양한 사람들은 자신의 지방 말로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께서는 서로 다름을 극복하고 모두가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심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한때 인간이 자신의 힘에 의지하여 하늘에 닿는 바벨탑을 세우려 하자, 하느님께서 인간의 교만을 꺾으시고자 사람들이 여러 가지 언어를 말하게 하심으로써 서로 소통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성령께서는 이를 극복하시고 믿음으로 일치를 이루게 하십니다.
이처럼 “다른 언어들”을 사용하며 서로 갈라진 상황이라 하더라도, 일치의 성령께서 함께하시는가 아닌가, 여부에 따라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놓기도 하고 또 갈라놓기도 합니다.
그리고 같은 성령께서 각자에게 나누어 주신 선물들을 모두가 공동선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다면, 또한 나에게 덤으로 주신 선물이 있어서, 부족한 이들을 위해 내놓을 수 있다면 세상은 더욱 풍요 속에서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줄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주님의 협조자로 오시는 이 성령강림 대축일에 나에게 오신 성령의 은총을 곰곰이 생각해 보고 이제 일상에서 오는 걱정이나 두려움에만 빠져있을 것이 아니라 평화 속에서 기쁨과 용기를 지닌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도록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