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추모 미사 강론)

 

12년 사목의 공통점

 

오늘은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입니다. 지난 주일 우리는 주님 부활 대축일을 지내고 오늘 드디어 이곳 배론성지에서 본당의 날 기념으로 주일 미사를 드립니다. 잘 알다시피 전포성당의 명의는 예수 부활입니다. 본당 창립일은 1125일이지만, 본당 명의가 예수 부활이니만큼 부활 시기에 성지에서 미사를 드리는 것은 참 뜻깊은 일이고 은혜로운 날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게다가 올해는 희망의 순례자 희년이고, 오늘 이 미사 자체로써 전대사가 베풀어집니다. 오늘 미사가 더 의미가 있는 것이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위한 추모미사를 겸한다는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이곳 배론에 묻혀 계신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과 선종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사목 기간이 12년으로 일치합니다.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님은 과로와 장티푸스로 40세를 일기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5도에 127개의 교우촌을 돌아다니시며 하루 평균 15킬로, 7천 리를 걸어 다니셨습니다. 당시 교우촌은 일반 고을이 아니라 깊은 산속에 숨어 있었습니다. 최양업 신부님은 낮에 걸으셨고 밤새 신자들에게 고해성사와 미사, 그리고 성체를 영해주셨습니다. 또 교리와 성경을 가르치셨고, 동이 트면 포졸들의 감시를 피해 얼른 다른 교우촌으로 향하셨습니다. 그래서 기록에 따르면 한 달 동안 맘 놓고 밤에 잠을 청한 날이 고작 5일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과로사할 만하지요. 신자들과 교회를 그토록 사랑하신 것입니다. 가난과 굶주림 속에서 살아가는 교우들이 박해까지 받고 있으니 참으로 신부님은 가슴 아파했습니다. 그럼에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교우들을 보고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인내하며 기쁨과 보람으로 사목을 하셨습니다. 우리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또 어떻습니까? 재위하자마자 교황의 권위를 내려놓고 프란치스코라는 교황명답게 청빈하고 겸손하게 교황직을 수행하셨습니다. 반면 사회적 약자들에게 고통을 가중시키고 공동의 집 지구를 파괴하는 불의한 세상을 향해서는 강하게 정의와 평화의 메시지를 던지셨습니다. 마지막 부활 대축일 미사에서 끝까지 세상에 호소하신 것은 전쟁의 종식이었습니다. 최양업 신부님과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사목 12년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무한한 신뢰와 사랑, 성모님께 대한 특별한 애정과 존경, 민초들의 슬픔과 아픔에 대한 공감과 위로, 죽는 순간까지 일관된 사목적 열정과 겸손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곳 배론성지에서 두 위대한 사목자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합니다. 두 분은 오늘 복음에 나오는 진복팔단을 다 실천하신 분들이었습니다. 비록 현세에서의 삶은 끝났지만 이제 하느님 품 안에서 성인들과 함께 영원히 빛나고 있을 것입니다.

 

끝으로 최양업 신부님의 일곱 번째 편지의 한 대목과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부활절 마지막 강론의 일부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성사를 받지 못한 신자들은 다음 날 저를 뒤쫓아 백 리(39.2km)나 되는 험준한 길에도 불구하고 다른 교우촌까지 와서 성사를 받았습니다. 마을에서 나올 수 없었던 그 밖의 신자들은 실망과 한숨 속에 그냥 내버려졌습니다.

 

저는 교우촌을 두루 순회하는 중에 지독한 가난에 찌든 사람들의 비참하고 궁핍한 처지를 자주 목격합니다. 그럴 때마다 도와줄 능력이 도무지 없는 저의 초라한 꼴을 보고 한없이 가슴이 미어집니다. 저들은 포악한 조정의 모진 학정 아래 온갖 종류의 가렴주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동포로부터 오는 박해, 부모로부터 오는 박해, 배우자로부터 오는 박해뿐 아니라, 친척들과 이웃들로부터도 박해를 받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빼앗기고 험준한 산속으로 들어가 형언할 수 없이 초라한 움막을 짓고 2년이나 3년 동안이라도 마음 놓고 편안히 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다음은 교황님의 마지막 강론입니다.

주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셨고, 더 이상 무덤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부활의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분은 살아 계십니다! 더 이상 죽음의 포로가 아니시며, 수의에 감싸여 계시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을 단지 옛 이야기 속의 인물로, 고대의 영웅으로, 박물관 속 조각상으로 가두어 둘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분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가만히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행동해야 합니다. 일어나서 그분을 찾아야 합니다. 삶 속에서, 우리 이웃의 얼굴 속에서, 일상적인 일 속에서, 무덤이 아닌 모든 곳에서 그분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쉬지 않고 그분을 찾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부활하셨기에, 이제 어디에나 현존하시며, 우리 가운데 거하시고, 우리가 만나는 형제자매들과의 길 위에서, 일상의 평범하고도 뜻밖의 순간들 속에서 당신 자신을 감추시기도 하고 드러내시기도 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최양업 신부님 시대처럼 더 이상 박해를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황님의 생전 말씀처럼 우리는 그보다 더 신앙적으로 위험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창조하신 이 세상과 인간을 파괴하고 절망의 늪으로 내모는 죽음의 문화, 끝이 없는 소비와 쾌락,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무관심과 불평등 등. 우리는 참으로 진정한 신앙인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박해 시대의 교우촌 신자들의 믿음은커녕 우리는 외교인 마냥 신앙이 없는 것처럼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 바오로 사도의 로마서 말씀이 우리를 더 부끄럽게 만듭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희망을 가져야 하겠지요.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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