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주님 부활 대축일 낮 미사 강론)
부활의 삶을 산다는 것은
만일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된 것입니다. 부활이 없으면 그저 윤리 도덕적인 가르침만 있을 뿐 영원한 생명과 무관한 종교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우리의 삶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인성을 가지신 그분이 최초로 부활하셨기에 우리는 그분의 가르침대로 살아갔을 때 영원한 삶을 누린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부활은 단지 육신의 소생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육신의 부활이라는 사도신경의 문구는 생명이신 하느님 안에서 온전한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육신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지금도 가능한 것이고, 육신 생명이 다하고 죽음이 찾아와도 계속 연장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하느님 말씀 안에서 충실히 살아가면 우리는 참된 인간이 되고,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신성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요한복음은 우리에게 빈 무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빈 무덤 자체가 어찌 부활의 증거가 되겠습니까? 부활의 과정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 없는 이상, 빈 무덤은 여전히 우리에게 미스테리로 남아 있습니다. 물론 성경학자들은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이 아마포와 따로 개켜져 있었다는 증언을 근거 삼아 시신 도굴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이미 다량의 향료와 몰약이 시신을 감싼 천과 뒤범벅되어서 접착제처럼 달라붙어 있는데 긴박한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분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지요. 아무튼 베드로와 요한은 스승의 시신이 사라진 것만 확인했지 아직 그분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시기 전까지 말입니다. 아무튼 빈 무덤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주님께서는 더 이상 죽음의 영역에 머물러 계시지 않고 생명의 영역으로 넘어가셨다는 것입니다. 빈 무덤은 일종의 표징입니다. 그리고 표징은 믿음을 수반합니다. 눈으로 확인해서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다는 주님의 말씀을 믿기 때문에 부활하신 그분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없으면 눈앞에 주님이 실제로 나타나도 의심하고 부정할 것입니다.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맞아 이 기쁜 날,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우리가 부활의 증인이라는 것입니다. 얼마 전 부활의 증인 중에 한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안동 교구 초대 교구장이셨던 두봉 주교님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주교님은 프랑스 사람입니다. 이미 세계 제2차 대전을 겪으신 주교님은 어린 시절 제대로 먹지 못해서 양팔을 벌린 길이가 신장과 같다고 합니다. 전쟁의 공포와 굶주림 속에서 영양실조에 걸린 것이지요. 그 고통을 체험으로 잘 아시는 주교님은 사제 서품 후 한국 전쟁이 끝난 그 이듬해, 즉 1954년 당신의 사목지로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극동 아시아의 가난한 나라, 한국을 택하십니다. 그리고 70여 년간 한국에서 사목을 하시면서 항상 사회적 약자들 편에 서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농민운동을 하셨고, 한센인들을 돌보셨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시절 배움의 기회가 없는 여성들을 위해서 학교도 세우셨습니다. 주교님이 지향하는 교회상은 가난한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누구하고도 잘 어울리시는 다정다감함, 사회적 약자를 짓밟는 불의한 독재 정권에 맞서 추방당할 위기에도 정의를 부르짓는 떳떳함, 가난하고 병든 이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고 하는 측은지심과 평소의 검소함, 타종교에서도 상을 줄 만큼 탁월한 인품을 가지신 주교님의 모또는 ‘기쁘고 떳떳하게’ 였습니다. 향년 96세로 장수하셨지만, 마지막은 고위 성직자가 아니라 평범한 신자로 돌아가셨습니다. 여느 신자들과 같이 동료 사제에게 청한 것은 고해성사였습니다. 그리고 고해 후 숨을 거두시기 전 마지막 말씀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였습니다.
우리는 압니다. 두봉 주교님의 삶이 부활 신앙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서두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부활은 참된 인간성의 완성입니다. 주교님은 거룩한 죽음으로써 삶을 완성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번 부활절을 탄핵정국과 대선정국에서 맞이합니다. 온 나라가 정치적으로 분열되어 있고, 이념적으로 극단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주교님의 죽음이 던져주는 화두는 무엇일까요? 주교님은 지금 천국에서도 당신의 모또처럼 기쁘고 떳떳하게 살고 계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잠시 머물렀다가 지나가는 이 세상에 너무 연연하지 마십시오. 물론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자신의 주어진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각자의 위치에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은 그것을 초월하는 사람들입니다. 발은 비록 땅에 딛고 있지만 머리는 항상 하늘을 향해 있어야 합니다. 이번 부활을 맞아 우리는 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부활의 증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삶으로 증거해야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