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주님 만찬 성목요일 강론)

 

세족례의 참뜻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 생애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공생활 중 예수님의 모든 말씀과 행적은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성찬례와 세족례에서 온전히 수렴되고 요약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신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사실 요한 복음사가는 다른 복음사가와 달리 성찬례 제정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공관복음에서 공통적으로 다루어졌고, 요한복음이 쓰여질 당시 이미 초대 교회 신자들은 성찬례를 당연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요한복음 사가는 오히려 성찬례의 의미를 더 심화시키기 위해서 공관복음에는 없는 세족례 사건을 의도적으로 삽입시킵니다. 일반적으로 외출 후 집에 돌아와서 발을 씻는 것은 정결례에 속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성찬례가 다음날 있을 십자가 희생 제사를 예표하듯이, 세족례를 십자가 희생 제사를 통하여 사하여질 속죄의 의미로 행하십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은 때를 씻는 행위가 아니라 죄를 씻는 예식이었습니다. 보통은 세족례를 스승이 제자들에게 섬김의 본을 보여주시기 위해 행하셨다고 생각하는데, 물론 그런 의미도 있겠지만 본질적인 의미는 제자들의 죄를 사하여 주는 행위였던 것입니다. 그 근거를 우리는 세족례를 극구 사양하던 베드로에 대하여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요한 13,8) 여기서 베드로가 나누어 받아야 하는 몫은 바로 용서를 통한 구원입니다. 십자가에서 속죄양이 되셨던 주님께서는 전날 밤에 세족례를 통해서 미리 제자들을 용서하신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하게 됩니다. 이 세족례가 있은 다음에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세 번이나 당신을 배반할 것이라고 예고하신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닭이 울기 전에 베드로의 배신을 이미 알고 계셨고, 시간을 거슬러 그때 이미 용서하신 것이 됩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이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데,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주님께서 세 번이나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너 나를 진정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고 세 번의 사랑 고백을 받고 난 다음 당신의 교회를 맡기실 때입니다. 아마도 베드로는 교회의 수장으로 복권시키신 예수님의 은덕을 생각하면서 항상 세족례를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족례를 마치고 하셨던 주님의 유언을 되새겨겠지요.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기 본을 보여 준 것이다.”(요한 13,14-15)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은 서로에 대한 용서입니다. 참된 용서는 정의가 아니라 사랑 안에서 가능합니다. 사랑하면 그 사람의 죄와 허물을 뛰어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당신이 돌아가실 때가 온 것을 아시고,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복음은 전합니다. 참된 사랑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끝까지 사랑하셨다’(요한 13,1)는 표현은 제자들이 죄를 짓기 전에도, 죄를 짓는 중에도, 죄를 지은 후에도 일관되게 사랑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분의 사랑은 그 어떠한 죄와 배신에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제자들이 배신할 것임을 이미 알고 계시면서도 끝까지 사랑하신 이유는 사도들이 대표하는 인류의 모든 당신의 제자들을 품으시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요? 어쩌면 배신자라는 죄책감으로 끝내 자살한 유다 이스카리옷까지도 끝까지 돌아오기를 기다리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유다가 자신의 죄를 직시하고 뉘우치도록 배신을 암시하는 말씀을 여러 번 하시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아무튼 강론을 마치면 곧이어 세족례에 들어갑니다. 올해는 구역 대표가 아니라 사목위원들로 선정했습니다. 사목위원들은 교회의 봉사자이자 평신도들의 대표입니다. 사제인 제가 발을 씻었으니 이제 여러분들은 서로의 발을 씻어주십시오. 그것은 서로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갈등과 반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 여전히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나를 용서하셨으니 이제는 내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성체를 하기 전에 항상 주님의 기도로 그 준비를 합니다. 주님의 기도는 말합니다. 우리가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오니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오늘은 성체성사가 제정된 날입니다. 성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제사를 의미하는 것이고, 이는 용서를 전제합니다. 십자가에서 주님은 오늘도 나를 용서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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