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26일 사순 제3주간 수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때때로 강론을 준비하는 것이 피를 말리는 일임을 실감한다. 오늘 복음에 대한 강론 준비는 나에게는 피를 말리는 일이었다. 오늘 복음에 대한 강론 준비시간은 « 비둘기처럼 양순하고 뱀처럼 슬기로워야 한다 »는 예수님의 말씀이 참으로 버겁게 다가오는 시간이었다. 되도록 짧게 강론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오늘 강론을 준비했다.
복음이 언제 어디에서 읽히느냐에 따라서 그 복음을 받아 들여야 하는가, 무시해야 하는가, 거부해야 하는가 라는 물음을 던진다면, 적어도 제대로 된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화를 낼 것이다. 그리고 복음은 시대나, 장소나, 사람에 상관 없이 한결같이 복음으로 남는다고, 또 복음으로 남아야 한다고 할 것이다.
그러면, 복음이라는 단어 대신에 법이라는 단어를 넣어보면 어떨까? 법은 만인에게 평등해야 한다는 원칙은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지켜져야 하는 원칙일까? 아니면, 어떤 사람에게는 혹은 어떤 장소나 어떤 때에는 조금 무시되어도 좋은 원칙일까?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서, 힘이 있고 없음에 따라서 그 적용이 달라지는 법은 있으나 마나 한 법이며, 그런 법은 당장이라도 폐기되어야 할뿐만 아니라, 그 법을 집행하는 법조인 역시 옷을 벗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상식에 바탕을 둔 것인가? 아니면, 생트집 잡고, 똥고집 피우는 일인가?
이런 물음을 던지면, 어떤 사람들은 종교와 정치와 사법이 같냐고 화를 버럭 낼 것이다. 종교가 관여해야 할 구역이 따로 있고, 정치와 사법이 관여해야 할 구역이 따로 있는데, 그 구역을 침범하는 것은 정교분리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라는 그럴싸한 논리를 댈 수도 있을 것이다.
정교분리, Laicitas라는 원칙은 정치와 종교가 각자의 영역이 따로 있으니까 서로 간섭하지 말라는 원칙이 아니다. 정치와 종교는 인간의 역사 속에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서양의 중세시대에는 정치 위에 종교가 존재하기도 했고, 근세 이후에는 종교 위에 정치가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고 서로에게 올바른 길을 제시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참다운 정의와 사랑과 평화와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정교분리 원칙의 취지다.
오늘 복음이 이 나라 이 땅 대한민국의 상황 아래에서 읽혀지고 있다. 율법폐기론자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고, 율법지상주의자들은 예수님을 거짓 예언자, 선동꾼으로 매도하고, 그를 죽이고 싶은 증오심을 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모든 것들을 물리치고, 율법의 근본 정신과 목적을 확고히 했다. «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시오.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소.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오. »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은 우리들에게 율법의 참 스승이시면서 동시에 율법의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준다. 예수, 예수가 그립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자고 했다. 오늘, 하루 종일 예수를 그리워하며 지내고 싶다. 그리고 나부터 법의 근본 정신을 다시금 되새기고, 법 때문에 눈물 흘리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은 연대를 키워내고 싶다.
여러분은 오늘 하루 어떻게 보내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