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수난 성지주일(다해, 2025년 4월 13일)강론
또 다시 맞이한 성주간(聖週間), 우리 죄인들을 향한 하느님의 극진한 사랑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은총의 시기입니다. 성주간 월요일에는 예수님의 죽음을 예고하고(요한 12,1-11), 화요일에는 제자들의 배반을 예언하며(요한 13,21-33.36-38), 수요일에는 유다의 배반과 예수께서 파스카 축제를 지내신 사건을 기념합니다(마태 26,14-25). 그리고 성주간 목요일부터 성토요일까지는 성주간에서도 가장 핵심이 되는 날들로서 ‘파스카 성삼일’이라고 부릅니다.
이 성주간 동안 우리는 또다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걷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 동안 교회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오늘날 ‘내 인생’에 던져주는 의미가 무엇이며, 십자가 앞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지 묵상하도록 초대합니다.
사순시기 동안 우리가 행했던 회개와 보속이 오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모아집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느님에 대한 순명이며, 우리 인간과의 유대이고, 그분의 고통이 바로 부활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오늘 수난 복음에 나오는 올리브 가지는 모든 불행을 극복하는 부적이 아닙니다. 오히려 왕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세주로 인정하고 환영하는 꽃다발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왕관은 금관이 아니라 가시관이며 왕권은 역설적이게도 보잘것없는 십자가입니다. 바로 이 모욕과 고통, 그리고 버려짐 속에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숨어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세상에서 가장 의로우신 분이 처형대에 매달리심으로써 불의와 폭력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대변해 주십니다.
오늘 수난 복음에 나오는 올리브 가지는 모든 불행을 극복하는 부적이 아닙니다. 오히려 왕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세주로 인정하고 환영하는 꽃다발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왕관은 금관이 아니라 가시관이며 왕권은 역설적이게도 보잘것없는 십자가입니다. 바로 이 모욕과 고통, 그리고 버려짐 속에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숨어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세상에서 가장 의로우신 분이 처형대에 매달리심으로써 불의와 폭력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대변해 주십니다.
우리는 신앙을 통해서만 십자가의 무능함 안에 계신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십자가는 단순한 처형대가 아니라 희망의 십자가요, 구원의 십자가로 변화되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희망과 구원을 확신한 사례가 생각납니다.
1597년 일본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천주교 신자들을 잡아 죽이라고 명하자, 교토와 오사카 등지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24명이 체포되어 추운 겨울날 800킬로미터를 쇠사슬에 묶인 채 걸어서 나가사키까지 끌려왔습니다. 그들은 1597년 2월 5일 아침 나가사키 언덕에서 수천 명이 보는 앞에서 십자가에 매달린 채 창에 찔려 순교했습니다. 이 순교자들을 멀리서 호송해온 이들 중 두 사람은 신자가 아닌데도 이들의 숭고한 모습에 감동을 받아 즉시 예수님을 믿고 함께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순교자들처럼 우리도 십자가 위에서 완전한 사랑을 보여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에 매료될 수 없을까를 묵상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드러나는 예수님의 모습은 광명과 어두움, 환희와 비애, 영광과 수난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대조적인 모습은 우리 신앙인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즉, 예수님을 왕으로, 구세주로 대접하는 군중의 무리가 ‘신앙의 나’라면, 순간적으로라도 예수님을 배척하고, 본능 또는 불의와 타협하여 신앙생활을 멀리하는 무리는 ‘배교의 나’가 됩니다. 이처럼 우리 안에는 ‘신앙의 나’와 ‘배교의 나’가 동시에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안의 양면성, 즉 사랑과 미움, 봉사와 이기심, 헌신과 질투를 굳이 부인할 필요 없이 오히려 겸허하게 인정하고 ‘자기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통해 수난의 길에 동참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다시 한번 우리의 신앙을 생각해 봅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고, 아무리 많은 말씀을 전하고,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자신을 내어주는 삶, 즉 사랑으로 살아가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신앙인으로서 다른 사람들의 아픔과 슬픔을 함께 나누며, 고통 중에 있는 이들에게 위로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두려워하거나, 걱정하지 말고, 주님과 함께 충실하게 주어진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
이 전례가 끝나고 교회를 나서면 또다시 세속적인 삶으로 돌아가겠지만, 이제는 자신을 내어주고 상대를 먼저 배려하는 변화된 삶, 사랑의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