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마지막 일주일
예수님의 일생은 기껏해야 30년 남짓 됩니다. 그러나 그 30여년 세월의 대부분은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활동하신 1년 남짓, 요한복음에 의하면 길어야 3년 남짓한 기간에 있었던 일 뿐입니다. 더구나 네 복음서 모두 예수님의 죽음 직전의 2-3일의 일들을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해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실상 복음서가 우리에게 가장 전하고 싶었던 내용은 바로 이 2-3일에 일어난 일들이고, 오늘 우리가 함께 읽었던 주님의 수난과 죽음에 관한 증언들이며, 오늘부터 우리가 그 여정을 따라 걷게 될 첫번째 성주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의 가장 큰 축제인 파스카 축제에 맞추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십니다. 파스카 축제는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탈출했던 사건을 기념하는 축제입니다. 이 축제는 일주일 동안 진행되는데, 맨 마지막 토요일 안식일을 마치면 끝납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안식일이 시작되는 금요일 저녁에 파스카 식사를 합니다. 이 식사 때에 이집트 노예생활과 광야 생활을 되새기며 누룩없는 빵과 쓴 나물을 먹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목요일 저녁에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식사를 합니다. 이 식사 중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이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맺어지는 새로운 계약이며, 이 파스카 식사가 바로 당신의 죽음을 기억하고 부활을 준비하는 식사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첫번째 성목요일의 주님의 만찬을 우리는 성목요일 밤 주님 만찬 미사로 재현합니다.
파스카 식사가 끝난 후 예수님은 산에 오르시어 기도하시는 중에 유다 최고의회의 병사들에게 체포되십니다. 최고의회로 끌려가서 하느님을 모독했다는 판결을 받았지만, 유다인들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금요일 새벽에 로마 총독에게 예수님을 끌고 갑니다. 예수님은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로마제국에 대항하여 이스라엘의 왕으로 자처했다는 정치범으로 몰려 십자가형을 선고받습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파스카 축제를 위한 어린양을 잡는 시간인 오후 세시에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당신 죽음을 맞이하십니다. 우리는 성금요일 오후 세시에 주님을 따라서 십자가의 길을 함께 걸을 것이고, 성금요일 저녁에 주님의 수난을 기억하는 수난예식을 거행합니다.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 당일인 토요일은 안식일이기에 아무도 무덤을 찾아가지 못합니다. 토요일이 끝난 후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해서 사도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지만 예수님의 시신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그날부터 예수님께서는 여인들과 사도들에게 계속해서 나타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느님의 생명으로 부활하셨음을 보여주시고, 사도들에게 이 사실을 세상에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토요일밤 우리는 주님부활 파스카 성야미사를 봉헌합니다. 유다인들이 이집트의 노예살이에서 해방된 첫번째 파스카,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신 두번째 파스카를 기억하며, 우리 역시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갈 우리들의 파스카를 기도할 것입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죽음을 눈 앞에 둔 주님의 마지막 일주일의 여정을 함께 걸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과 사명의 절정의 여정이 오늘부터 시작됩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마지막 여정에 동반하며, 예수님의 마음을 느끼고, 예수님께서 남겨주신 성체성사와 부활의 신앙을 다시 새롭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여정의 시작,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심을 묵상하며, 오늘 이 미사를 정성껏 봉헌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