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12일 사순 제1주간 수요일 미사 강론
천주교 부산교구 김해성당 이균태 안드레아
예전 사람들은 참 순진했구나 하는 생각이 오늘 제1독서를 읽으면서 퍼뜩 든다. 니네베 혹은 니느웨라고 알려진 도시에 한 뜨내기가 나타나서는 « 이제 사십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 ! »라고 목이 터져라 외쳐댄다. 감히 니네베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명령한다. 그 뜨내기의 이름은 요나였다. 만일 요나가 우리 시대에 나타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요나의 말에 귀를 기울일까 ? 듣보잡이었던 요나가 도시 한복판에 나타나서는 « 이제 사십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 ! »라고 하니까, 그 도시의 사람들이 그의 말을 믿고는 단식을 선포하고 가장 높은 사람부터 가장 낮은 사람까지 자루옷을 입고, 왕까지도 자루옷을 걸치고는 잿더미에 앉아서 온 백성에게 명령했다: « 단식하고 단주하라, 악한 길과 폭행에서 돌아서라 ».
요나 이야기는 그저 이야기일뿐이다. 요나서는 실제 일어난 사건을 다룬 책이 아니라, 지어낸 이야기다. 하지만, 요나의 이야기는 한낯 공상이 아니라, 인류가 걸어가야 할 바른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잘못을 범한 것에 대해서,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칠 줄 아는 인류, 자신들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인류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요나의 이야기를 매개로 해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요나는 싫다는데도 하느님께 멱살이 잡혀 니네베라는 큰 도시로 가서, 그 도시의 사람들이 싫어하는 소리들, 그들 마음의 평화를 깨뜨리는 소리들을 해야 했던 하느님의 사람이었다(요나 2,2-3참조). 요나는 값싼 마음의 평화를 외치지 않았다. 풍요와 안락이 곧 행복이며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외치지 않았다. 오히려 돈과 힘이 가져다 주는 평화는 거짓이라고 외쳤고, « 너희의 죄악이 하늘에 사무쳤으니 불벼락을 맞으리라 »라고 부르짖었다. 타락과 안락에 몸뚱아리 모두를 내어 맡긴 사람들의 머리채를 쥐어 흔드는 사자후였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그 사자후를 니네베 사람들은 받아 들였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당신께서 보여주실 기적이라는 것은 요나의 기적밖에는 없다고 하셨다. 요나의 기적, 그것은 바로 부활이다. 기적을 보고도 신앙을 가지지 않는 이들이 있었고, 오늘날에도 그런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예수의 부활을 이야기해도, 그 부활을 믿는 사람은 믿을 것이고, 믿지 않는 사람은 여전히 믿지 않을 것이다.
사랑하는 김해성당 형제, 자매 여러분,
요나의 이야기처럼,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파멸을 예고했을 때에, 그 파멸이 자신들의 죄의 결과임을 깨달을 줄 아는 니네베 사람들처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알아보고, 그 죄를 뉘우칠 줄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회개의 때, 부활의 기쁨을 기다리는 때, 우리는 지금 사순시기를 살고 있다. 예수라는 분을 주님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그리스도 신앙인인 우리가 진정 회개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 하느님을 믿는 데에 방해되는 모든 것들을 제거하거나 물리치려는 노력들이 회개다. 하느님의 자리에 하느님 아닌 다른 것을 놓아두는 일체의 행위가 바로 우상숭배다. 하느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하느님을 모시지 않고, 그 자리에 내가 최고라는 내 생각, 내가 먼저 대접 받아야지 하는 마음, 내가 부자가 되게 해달라, 내가 힘있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는 바램, 마음의 평화만을 바라는 내 욕망, 내 돈, 내 권력, 내 명예, 내 능력, 이런 것들을 올려놓는 것이 바로 우상숭배다. 그 우상숭배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지려는 노력들이 회개다. 회개, 차일 피일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시작해 보자. 하다가 힘겨울 때엔, 잠시 쉬는 때도 필요하겠지만, 다시 또 다시 시작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