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5주일(다해, 2025년 4월 6일)강론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너그럽고 자비로우니, 이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오늘의 복음 환호송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마지막까지 기다리시는 주님의 마음을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죄가 아무리 크더라도, 또 인간들이 경솔하게 서로를 단죄하려 해도, 하느님께서는 죄를 용서해 주심으로써 생명과 품위와 명예를 되돌려 주시고 자유를 주시는 분입니다.
오늘 복음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두고 예수님을 사면초가로 몰아가는 유대인들의 간교함과 이를 극복하시고 여인을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당시 간음한 여인은 율법에 따라 중형을 받아야 하고, 바리사이들은 그 상황에 대해 모세의 율법과 하느님의 자비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예수님께 요구합니다.
만일 간음한 여인을 율법서대로 돌로 쳐 죽이라고 한다면, 예수님 당신의 가르침에 어긋날 것이며 반대로 그 여인을 살려주라고 한다면 율법을 어기는 대역죄인이 되어버리는 사면초가로 예수님을 몰아세우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예수님을 궁지로 몰아가려는 인간적 계략입니다.
소위 딜레마에 빠지신 예수님께서는 전혀 다른 말씀으로 이 위기를 극복해내십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모두가 죄인으로서 서로를 판단할 수 없는 인간들의 비천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통해 예수께서는 무자비한 심판에서 죄인을 구하시는 하느님 자비의 메시지를 보여주십니다.
누가 누구를 단죄하면서 살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 말씀은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해주십니다. 우리 모두 그 여인과 다를 바가 없이 죄 중에 살아간다는 것을, 그러나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의 크신 사랑과 자비를 입은 존재임을 알게 해주십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는 참으로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주십니다. 이처럼 참된 용서는 양심의 가책에서 오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완전히 잠재우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한 예화가 생각납니다.
어떤 아이가 친구의 가방을 뒤져 친구의 시계를 훔쳤는데 시계를 가지고 있으면 들킬 것 같아 방과 후에 가져갈 생각으로 학교 뒤뜰에다 묻었습니다. 교실로 돌아오는데 손에 흙이 묻어 수돗가에 가서 손을 씻었습니다. 교실에 돌아온 아이는 깜짝 놀랐습니다. 선생님이 먼저 들어와서 아이의 행동을 다 보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아이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아이에게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난 널 용서할 수 있단다. 그렇지만 얘야, 네 손에 묻은 오물은 물로 씻어 내렸지만, 네 양심에 묻은 오물은 어떻게 씻어내지?”
아이는 시계를 다시 친구의 가방에 넣었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그 아이는 그 후로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우리 인간은 삶을 살아가면서 6가지 감옥 속에 갇혀 지내는 경우가 많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첫째 감옥은 ‘자기도취’의 감옥입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공주병, 왕자병에 걸린 사람들을 들 수 있겠습니다.
둘째 감옥은 ‘비판’의 감옥입니다. 이 감옥에 들어간 사람은 항상 다른 사람의 단점만 보고, 비판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다 보니 친구가 없습니다.
셋째 감옥은 ‘절망’의 감옥입니다. 이 감옥에는 의외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감옥에 들어간 이들은 항상 세상을 불평하고, 비관적으로 바라봅니다.
넷째 감옥은 ‘과거지향’의 감옥입니다. 이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은 옛날이 좋았다고 하면서, 현재를 낭비합니다. 이렇게 과거에만 연연하다 보니 현재를 제대로 발전시킬 수 없습니다.
다섯째 감옥은 ‘선망’의 감옥입니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라는 속담이 꼭 들어맞는 감옥입니다. 내 떡의 소중함은 모른 채, 남의 떡만 크게 바라보는 자가 있다면, 이 감옥에 갇혀 있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지막 여섯 번째 감옥은 ‘질투’의 감옥입니다. 이 감옥은 선망의 결과로 나타나는데 남이 잘되는 것을 보면, 괜히 배가 아프고 자꾸 헐뜯고 싶어집니다. 우리가 행복을 지향하면서도 어느 순간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자꾸만 속이 좁아지는 이유는, 대개 이러한 감옥들에 갇혀 있기 때문이 아닐까 겸허하게 생각해 봅니다.
죄를 지으면 우리에게는 하느님께 범한 죄를 다시 회복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고백성사를 제정하시고 고백성사를 통해 그 죄가 당신 피로써 씻겼다고 믿습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메시지는 구원의 기쁜 소식입니다. 그 기쁜 소식을 오늘 독서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예전의 일들을 기억하지 말고, 옛날의 일들을 생각하지 마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 우리 과거의 잘못들을 모두 지우고 회개를 통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면 진정한 자유가 다가올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사순절은 서로 용서하는 시기입니다. 이웃을 판단하기 전에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보고 반성하며,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해 주시는 그 사랑과 자비를 가진다면, 우리는 더 큰 죄를 용서받을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건설하기 위해 우리의 용서와 회개를 촉구하는 주님의 새로운 탈출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