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사순 제2주일 강론)

 

영광스러운 변모와 내 얼굴

 

프랑스의 유명한 작가인 발자크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얼굴은 그 사람의 됨됨이를 보여주는 하나의 풍경이며 그 사람의 인생사를 보여주는 한 권의 책이다.” 관상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낯빛이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과 지금의 인격을 말해준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푸근하고 자비로운 얼굴을 가진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굳어있고 불만 가득한 얼굴을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얼굴에 인생이 녹아든 것입니다. 한편 숨을 거둔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마치 잠을 자고 있듯이 편안하고 평화로운 얼굴을 하고 있는 반면, 또 어떤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분노하고 원망하고 용서하지 못했기 때문에 얼굴이 이미 돌처럼 굳어있고 표정이 악의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얼굴은 그 사람의 마음과 정신을 반영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의 얼굴은 지금 어떤 상태입니까? 나이가 들고 주름이 패어도 노년의 지혜와 아름다움은 감출 수 없고, 제아무리 화사하게 화장을 해도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질투와 욕심은 감출 수 없습니다. (물론 가끔 사람을 잘 못 볼 때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얼굴은 어떠했습니까? 세상에서 제일 빛나는 얼굴이었지요. 누구나 그런 얼굴을 가지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나 영광스러운 변모 뒤에 감춰진 메시지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입니다. 구약을 대표하는 모세와 엘리야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을 말하고 있었다고 복음은 전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되시기 위해서는 먼저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셔야 한다는 구원 역사를 세 분이 논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스승의 영광스러운 변모를 보고 들떠서 철없는 소리를 합니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루카 9,33) 베드로는 스승의 진의를 갈파하지 못하고 그저 영광에 도취되어 그 자리에 계속 머물기를 희망합니다.

 

베드로는 바로 지금 영광을 추구하는 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우리 역시도 주님의 수난 예고는 듣지 않고 눈앞의 영광에 도취되어 산 위에 초막을 짓고 계속 머물기를 바랄지 모릅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하느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루카 9,35) 우리들은 예수님의 빛나는 얼굴과 휘황찬란한 옷에만 집중하고 있지만, 예수님은 한결같이 사람의 아들은 반대자들에게 핍박을 받고 죽었다가 사흘 안에 되살아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신기루 같은 그릇된 영광에 현혹되지 말고 구름 속에서 들리는 하느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십자가 없는 영광 없고, 죽음 없는 부활 또한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존 본능은 고통과 죽음을 싫어합니다. 사순시기 극기 고행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머리로 알고는 있지만 몸으로 실천하려니 귀찮고 하기 싫어집니다. 사순시기 우리는 절제, 속죄, 기도, 자선 등의 재계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연습이 안 되어 있는 상태에서 갑자기 하려 하니 버겁고 자꾸 미루게 됩니다. 우리의 본능은 편하고 즐거운 것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번 부활 때 오늘 예수님처럼 영광스럽게 변모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매일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가끔 환하게 웃고 계시는 어머니의 영정 사진을 보면서 참 곱게 늙으셨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젊고 이뻐서가 아닙니다. 평생 고생하시고 희생하셨지만, 그래서 빨리 머리가 희어지시고 손과 발도 볼품없게 거칠어졌지만, 항상 가족들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그 십자가를 지셨기에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이 아니라 기쁨과 보람의 미소를 띠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미리 보여주신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얼굴 또한 마찬가지이겠지요. , 이제 우리 얼굴도 그렇게 만들어 갑시다. 비록 십자가를 지고 있지만 얼굴 찌푸리지 말고 웃으면서 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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