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사순 제1주일 강론)

 

유혹이 있는 곳에 성장이 있다.

 

사순시기 첫 주일 복음은 항상 유혹 사화로 시작됩니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단련 받았듯이 죄로부터 우리를 탈출시킬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 광야에서 단식하시며 극기 고행하십니다. 우리 또한 이 40이라는 상징수에 맞춰 사순시기 재계를 지키며 부활을 준비합니다. 먼저 오늘 복음의 모티브가 되는 탈출기 이야기에 귀 기울여 봅시다. 이집트에서 핍박받으며 부역 생활은 해 온 히브리들이 갈대 바다를 건너 탈출에는 성공했지만, 약속받은 땅으로 곧장 가지 못하고 이민족들의 위협을 피해 돌아가야 했던 곳이 바로 광야입니다. 광야는 말 그대로 거칠고 황량한 땅을 말합니다. 광야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먹는 문제였습니다. 절대적으로 식수와 식량이 부족한 광야는 매일 생존을 걱정하고 고민해야 하는 시련의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주 모세를 원망하며 비록 노예로 살았지만 모든 것이 풍족했던 과거 이집트 생활을 그리워합니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고는 하지만 실상 굶어보고 극심한 갈증을 겪어 보면 인간은 누구나 생존 본능으로 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딱 필요한 만큼만 허락하십니다. 기아 상태에 빠지지 않게 적당한 때에 모세를 통하여 물줄기와 샘을 찾게 하시고, 메추라기와 만나를 통하여 힘들지만 광야 생활을 버티게 해 주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집트 노예살이처럼 충분히 먹고 마시지는 못하였지만 자유인으로서 광야에서 믿음과 계약의 백성으로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사라지고 말 물질과 육신에 더 이상 노예가 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는 순례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사탄의 첫 유혹, 즉 돌이 빵이 되게 해 보라는 유혹에 맞서 예수님은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라는 성경 말씀으로 단호하게 되받아치십니다. 여기에 생략되어 있는 말씀은 사람은 본시 하느님 말씀에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이지요. 구약의 백성들이 물질적 안락함을 버리고 영적인 지혜와 생명을 얻게 된 곳이 광야라면, 우리 또한 매일 광야 같은 일상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는 순례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 둘째 유혹은 무엇입니까? 사탄은 세상의 모든 나라를 보여주며, 자신에게 경배하면 모든 권세와 영광을 주겠다고 합니다. 솔깃한 제안입니다. 이를 꿈꾸던 황제들이 있었습니다. 진시황, 알렐산델 대왕, 징기스칸, 나폴레옹 등. 그러나 대제국들은 흥망성쇠를 거듭하며 역사 안에서 다 사라졌습니다. ‘칼로 일어선 자는 칼로 망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말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 또한 이러한 유혹을 받습니다. 모세가 시나이산으로 계약의 판을 받으러 올라갔을 때, 이 공백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황금 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우상 숭배하며 먹고 마셨습니다. 사탄은 다양한 방식으로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우상 숭배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부와 권력 앞에서 우리는 지금도 굽신거리며 자신의 양심을 팝니다. 이에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고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모든 부와 권력의 원천은 하느님에게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원래 주인이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모든 재화는 사유재산이기 전에 공공성이 있는 것이고, 권력 또한 하느님의 뜻에 위배 된다면 불의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권력이란 모름지기 여·야 간 권력 투쟁의 전리품이 아니라 국민들을 섬기고 살피기 위한 위임된 권한 아닙니까? 정말 진정한 부자와 위정자라면 종교를 떠나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자비와 정의의 관점에서 자신의 소유와 권력을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사탄은 예수님께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서 투신하라고 유혹합니다. 그러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천사들이 구해준다는 달콤한 말과 함께 말입니다. 이 이야기는 주위 평판과 기대에 끌려다니는 나약한 인간의 본성을 대변해 줍니다. 항상 우리는 남과 비교하며 자신을 평가합니다. 때로는 우월감으로 때로는 열등감으로 자신을 바라봅니다.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너무나 지나치면 시기 질투, 인기 영합, 과도한 명예욕에 빠질 수 있습니다. 건강한 자존감은 모두가 쳐다보는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가 아니라 시골 저잣거리에서도 기쁜 소식을 전하신 예수님에게서 그 모델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세례 사건과 영광스러운 변모 사건에서 하늘에서 들려온 소리를 상기시켜 보십시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으로 가득 찬 예수님은 언제 어디서든, 누구를 만나든, 어떠한 처지에 있든 자존감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에게 특별한 일이 일어나서 세간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하려는 사탄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하신 말씀이 성경에 있다.” 그리고 비록 십자가의 길을 가시지만 그 안에서도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며 죽음의 순간에도 믿음을 고백합니다.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기 나이다.”

 

오늘 세 가지 유혹 사화는 예수님 공생활 전체를 관통하는 악과의 중요한 투쟁을 그리고 있습니다. 비단 유혹이 세 가지뿐이겠습니까?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이런 말을 거듭 들려주었습니다. ‘악이 제일 증오하는 것은 회개하는 자의 결심이다. 우리가 선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 악은 발악하며 방해 공작을 일삼는다. 특히 은총의 사순시기에 악은 제일 활개를 치고 돌아다닌다.’ 오늘은 사순 제1주일입니다. 이제 시작이지요. 갈 길이 멉니다. 마라토너들은 일정한 페이스를 유지하며 쉬지 않고 달립니다. 그 과정은 대단한 인내력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마지막 테이프를 끊고 완주했을 때 그 기쁨과 보람은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순시기 레이스에 참가한 교우 여러분, 우리도 포기하지 말고 끈기를 가지고 사순시기를 보내도록 합시다. 완주하는 날 우리는 누구보다 더 부활의 기쁨과 보람을 충만히 누릴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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